목구멍·심장·생식기… 몸속 장기가 말을 건네네
삶은 몸 안에 있다 / 조너선 라이스먼
인체 탐험하는 이색 여행기
의사로서 솔직한 고백 공감
내 몸에 대한 관심 높아져
점점 병원에 갈 일이 많아진다. 보호자로 갈 때가 잦지만, 앞으로는 단골 환자로 병원을 찾게 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돌이켜 보면 살면서 여러 공부를 했다. 진학을 위해서, 그다음은 취업을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지만 정작 내 몸에 대해 알기 위해 공부한 기억은 없다. 젊을 때는 건강을 과신했다. 설사 아파도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다 알아서 해 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삶은 몸 안에 있다>를 읽고 정말 중요한 내 몸에 대해 왜 그렇게 무관심하게 살아왔는지 반성했다. 예비 환자인 이들이 많이 읽고 자기 몸에 대해 관심을 더 가지면 좋겠다.
이 책을 한 줄로 소개하자면 부제 그대로 ‘의사이자 탐험가가 들려주는 몸속에 감춰진 우리 존재와 세상에 대한 여행기’이다. 무슨 의사가 의사가 되기 전에 그렇게 세계 각국을 싸돌아 다녔고, 지금은 이처럼 글을 맛깔나게 쓰는 것일까. 저자는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2년간 러시아에 살면서 오지를 여행했다. 캄차카반도에서 원주민과 함께 지내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의대에 들어갔단다. 역시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몸은 간단히 바깥쪽과 안쪽으로 나눌 수 있다. 의사들은 안쪽의 삶에 중점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목구멍, 심장, 대변, 생식기, 간, 솔방울샘, 뇌, 피부, 소변, 지방, 폐, 눈, 점액, 손발가락, 혈액을 다루고 있다. 장기들이 주연배우고, 피부는 포장지 같은 것이라는 막말(?)까지 불사한다.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주제를 흥미롭게 묘사하는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예를 들면 변비와 설사는 그 경계가 명확치 않아서, 사람마다 의미가 달라 헷갈린다. 그는 설사 환자를 구분하는 방법으로 환자에게 “엉덩이로 오줌 누시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폭소와 함께 확실한 답을 들을 수 있다. 소변을 통해 결정적인 단서를 마주칠 때는 탐정이 된 듯하고, 때로는 소믈리에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애주가로서 술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 대목도 있었다. 어느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음주로 인한 안면 부상 덕분에 자녀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간은 술에 취해 과격하게 잘 넘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 몸속 장기에 대해 진짜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심장 모양으로 하트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커다란 아보카도와 더 닮았다.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작아서 멜론 정도 크기다. 의학 공부는 음식을 보는 시야를 넓히는 효과도 있다. 소와 사람의 구조는 이름만 다를 뿐 매우 비슷하다. 소고기의 안심은 사람의 엉덩허리근, 등심은 척추기립근에 해당한다. 저자 인생에서 가장 해부학적인 식사는 아이슬란드 전통 요리 ‘스비드’였다니 찾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먹는 음식이 한때 생명의 어느 곳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고 나면, 더 깊이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의사로서의 솔직한 고백에도 공감이 간다. 그는 “설령 자신감이 부족하다 해도 자신감을 보여야만 했다. 그래야만 당사자와 가족에게 확실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난히 불편했던 의사 한 명은 저자가 환자가 되었을 때 만난 사람이었다. 의사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내내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일은 무척 답답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래서 저자는 환자가 어디가 아파서 왔든 먼저 눈빛으로 소통하는 습관을 들였다고 강조한다. 눈빛은 목소리보다 오히려 솔직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병원에도 뿌리고 싶은 책이다. 조너선 라이스먼 지음/홍한결 옮김/김영사/324쪽/1만 68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