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행 버킷리스트? 달에서 ‘지구 멍’ 때리기!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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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여행 무작정 따라하기 / 에밀리아노 리치

달·목성 등 여러 행성의 여행 정보
가이드북 형식 빌어 유쾌하게 전달
읽는 동안 우주여행 대리만족 물론
우주과학 상식 늘어나는 ‘덤’까지

<우주여행 무작정 따라하기> 표지. <우주여행 무작정 따라하기> 표지.

<우주여행 무작정 따라하기>의 서문 ‘여행의 시작하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혹시 새로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만난다고 기대한다면 잘못 짚었다’고. 젠장, 잘못 짚었다. 표지를 보자마자 새로운 <은하수를…>를 기대하며 책을 집어든 거다. 그렇게 잘못 시작된 여행은, 책장을 넘기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지금껏 이렇게 낭만적인 우주과학서는 처음이다. 아니, 이렇게 낭만적인 여행서는 처음이다.


<우주여행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제시하는 2주간의 우주여행 코스. 책 뒤표지 중 일부분 <우주여행 무작정 따라하기>에서 제시하는 2주간의 우주여행 코스. 책 뒤표지 중 일부분

<우주여행…>은 2주간의 일정으로 우주여행을 계획 중인 지구인을 위한 책이다. 여행의 첫 목적지인 달을 시작으로 화성, 수성,금성, 목성 등을 거쳐 13일째에는 은하계 너머까지 찾아간다. 마치 도시를 여행하듯 각각의 행성 관련 여행 정보를 상세히 알려주는 가이드북이다. 이쯤에서 조용히 책을 덮으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가지도 못할 곳에 대한 여행서라니. 비현실적이다.

아니다. <우주여행…>은 충분히 현실적이다. 지금껏 나에게 우주 행성이란 ‘스타워즈’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고향 타투인이거나, 혹은 ‘기동전사 건담’의 우주 콜로니 중 하나인 사이드5(루움) 같은 곳들뿐이었다. 그에 비하면 달과 화성은 되레 얼마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가.

게다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관광 목적의 우주여행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실제 우주의 경계선이라 불리는 지상 100km 고도 이상을 다녀온 민간 우주 관광객들이 적지 않다. 아마존의 회장인 제프 베이조스가 대표적 인물이다. 세계 최초의 민간 우주 관광객인 데니스 티토라는 슈퍼리치는 무려 2001년에 이미 스스로의 생일선물로 7일간의 우주여행을 선물했다. 스페이스X의 설립자 일론 머스크는 2026년에 화성 관광을 시작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물론 머스크의 말은 그다지 신뢰할 게 못 된다.) 상황이 이럴진데, 어찌 론리플래닛(세계에서 가장 큰 여행서 출판사)은 이런 책을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는가.

우선 1박2일(?) 코스로 가능한 달 여행부터 소개하자. 달을 방문해 꼭 들러야 할 ‘핫플’을 꼽자면 바로 인류사의 주요 한 장면이라 할 수 있는 ‘고요의 기지’를 들 수 있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 이글호가 상륙한 곳. ‘고요의 바다’라는 용암평원의 남서쪽 지점에 위치한다. 혹시 우리의 내비게이션 앱에 달 지도 정보가 존재한다면 ‘고요의 바다’를 검색하거나, 혹은 직접 ‘00°41′15″N, 23°26′00″E’의 주소로 검색해도 된다. 이글호가 꽂아둔 성조기과 함께 인증샷 찍기는 필수. 암스트롱이 남긴 발자국은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달에는 바람이나 비 등 발자국을 지울 수 있는 어떠한 요인도 없기에 여전히 잘 남아있다.

시간적 여유만 된다면 멀리 떠있는 지구를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것도 추천한다. 태양 빛을 받아 예쁜 파란색으로 반짝인다. 왜 지구를 ‘블루마블’이라고 하는지 새삼 알 수 있다. 지구에서 달이 차고 기울 듯, 달에서의 지구도 차고 기운다. 1968년 우주에서 지구를 처음 본 아폴로 8호의 우주비행사 윌리엄 앤더스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달을 탐험하기 위해 이 먼 길을 왔는데,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지구를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여행이란, 낯선 곳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1968년 우주에서 지구를 처음 본 아폴로 8호의 우주비행사 윌리엄 앤더스이 당시 촬영한 사진. 달 표면 위로 푸른 지구의 모습이 아름답다. 나사 제공 1968년 우주에서 지구를 처음 본 아폴로 8호의 우주비행사 윌리엄 앤더스이 당시 촬영한 사진. 달 표면 위로 푸른 지구의 모습이 아름답다. 나사 제공

북유럽 극지방의 오로라를 보겠다는 내 버킷리스트도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목성의 오로라에 비할 바가 아니란다. 다만 주변 방사선대가 지독한 방사능을 뿜어내기 때문에 적절한 ‘행성 간 여행복’은 필수품. 태양계의 ‘땅끝마을’을 다녀오고 싶다면 해왕성을 목적지로 삼으면 된다. 명왕성이 해왕성보다 더 멀리 있는 태양계 행성이 아니냐고?.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천문학 책에는 태양계의 행성이 9개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은 명왕성을 왜소행성 등급으로 격하시켰다. 태양을 여행 루트에 포함시킬 땐 당연히 태양에 착륙할 순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SPF1000000 정도의 선블럭과 선글래스도 잊지 말자.

책을 읽는 내내 지구의 중력이 무겁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중력을 벗어나 우주로 향하고 싶다. 허풍쟁이 머스크의 말처럼 내후년엔 화성 여행이 가능해질까. 그동안 여행 스케줄이나 잘 짜둬야겠다.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듯. 구체적인 우주여행 계획이 없어도 좋다. 어차피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경이 막혔을 때에도 우리는 곧잘 유럽 어느 도시에 대한 여행서를 읽었다. 대리만족이다. 우주여행을 대리만족하는 사이, 우주과학에 대한 상식도 깊어진다. 에밀리아노 리치 지음/최보민 옮김/더퀘스트/332쪽/2만 2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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