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학 찾아 떠돈 40년 항적] 비행기 수하물 가방 바꿔 들고 가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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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고야 공항 가방 해프닝
빨리 나올 생각에 얼렁뚱땅 표 확인
호텔 도착해서야 실수 뒤늦게 알아채
‘야쿠자 가방 아닐까’ 조마조마 불안
한국인 상대로 일본말 더듬거려 창피

일본 나고야 주부공항 전경. 부산일보 DB 일본 나고야 주부공항 전경. 부산일보 DB

내가 탑승할 비행기는 17시 45분 김해 출발 19시 15분 나고야 도착 JL 988편이었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바다에서 보냈지만 무거운 고생보따리를 끌고 집을 나설 때는 언제나 아쉽고 뭔가 서운하다. 철판 한 장 믿고 사는 뱃사람들은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늙어가는 영감 혼자 보내기 안됐다고 마누라가 차를 몰고 공항까지 배웅해주었다. 나는 일찌감치 탑승 수속을 마치고 체크인을 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JL 988편 탑승객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반반쯤 되는 성싶었다. 배를 오래 탄 선원들은 외모와 걸음걸이만 봐도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대번에 감이 잡힌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김해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녹산 상공에서 기수를 금정산 방향으로 돌리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였다. 저 멀리 하구언 너머로 납빛 바다가 번득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화명동, 금곡동 아파트 단지가 시야에 깔렸다. 눈에 익은 수영강과 해운대 달맞이 언덕이 보이는 순간 비행기는 구름층을 뚫고 솟아올랐다. 고도 상승으로 인한 기압 변화로 귀에서는 뚜둑뚜둑 고막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창 밖으로는 새하얀 구름바다가 펼쳐졌다. 정상 비행항로에 진입했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끝나자마자 스튜어디스들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비행시간은 1시간 30분. 주마간산 격으로 구명복 착용법, 비상탈출 교육을 마치고 음료수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나는 단숨에 기린 맥주 한 캔을 다 비우고 다시 손을 내밀었다. 기내에서 서비스하는 맥주 맛은 만기 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가 최고이지만 일터로 나갈 때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신다.

기창 밖을 내다보니 비행기는 아직 동해 상공을 날고 있었다. 검푸른 바다 위에는 오징어잡이 배들이 집어등을 환하게 밝히며 밤바다를 수놓고 있었다. 나는 20여 년 동안 수출선을 타면서 대부분 일본회사 소속의 배를 탔다. 그래서 일본에 상륙하면 술집에서는 못하는 말이 없다. 가라오케에서 엔카를 배우며 닦은 실력이다. 흔히들 어순이 우리말과 같은 일본어의 경우 현해탄을 건너는 동안 급한 말은 다 배울 수 있다고들 한다. 일제강점기 때에 일본에서 노무자로 일하던 어느 조선인이 ‘배가 쌀쌀 아파서’ 병원에 갔다. 의사가 어떻게 아프냐고 묻자 일본어가 서투른 그 조선인이 ‘후네(船)가 고메고메(米米) 이따이(痛)’ 했더니 의사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라는 우스개가 있다.


김종찬 해양소설가는 나고야 공항에서 남의 가방을 잘못 들고 간다. 사진은 비행기 수하물 가방. 부산일보 DB 김종찬 해양소설가는 나고야 공항에서 남의 가방을 잘못 들고 간다. 사진은 비행기 수하물 가방. 부산일보 DB

배가 파도에 흔들리듯 기체가 약간 요동치는 듯했다. ‘금연’과 ‘시트벨트 착용’ 지시등이 켜지고 스튜어디스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오늘도 저희 JAL 여객기를 이용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잠시 후에 이 비행기는 나고야 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비행기가 터미널에 닿자마자 붐비는 기내에서 나는 얌체같이 재빠르게 빠져나왔다. 너무 늦게 나가면 픽업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인터-크루 직원한테 미안하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가니 다나카 상이 보세구역에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다. 늘 하는 일이라 다나카 상은 얼굴도 모르는 나를 귀신같이 알아보았다. “김 기간쬬(機関長)?” “하이, 쏘우데스!” “가방 찾아가지고 세관 검색대로 나오세요.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JL 988편 수화물 도착 램프가 켜지고 컨베이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가방은 한 개뿐이었다. 국제시장에서 산 3단짜리 싸구려 가방이었다. 고생보따리라 별로 값비싼 물건도 없어 자물쇠도 채우지 않았다. 잠시 후에 눈에 익은 가방이 나왔다. 나는 서슴없이 고생보따리를 끌고 세관 검색대로 갔다. 가방을 검색대에 올리자 젊은 세관원이 물었다.

“가방 속에 뭐가 들었습니까?”

“나는 일본 케이 라인 소속 배를 타는 선원인데 1년 동안 배에서 사용할 일용품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고생이 많겠습니다. 바로 나가세요.”

케이 라인 선원이라니까 세관원은 가방도 열어보지 않고 통과시켜 주었다.

“빨리 나왔네요.” 내가 나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다나카 상이 말했다.

다나카 상의 차를 타고 토카이시(東海市)로 달렸다. 공항에서 약 40분이 걸렸다.

‘토카이 시티 호텔(TOKAI CITY HOTEL)’에 도착했다. 방을 잡고 열쇠를 건네주면서 다나카 상이 말했다.

“기간쬬, 배는 내일 아침 9시에 부두에 접안하니까 7시에 픽업하러 오겠어요. 아침 식사 일찍 마치고 프런트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다나카 상이 돌아가려는 순간 가방을 보니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래도 조금 홀쭉한 것 같았다. 빨리 나올 생각으로 수하물표 번호도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들고 온 가방도 자물쇠 같은 건 없었다. 급히 가방 지퍼를 열어본 순간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내 가방 안에는 공항에서 산 <부산일보>를 덮어 두었는데 이 가방 속에는 빨간 운동복과 한약첩이 들어 있었다. 아니, 이 일을 어쩌나!

“앗! 다나카 상. 큰일 났어요. 내 가방이 아닙니다.”


혼잡하고 복잡한 공항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 일대. 사진은 김해공항 모습. 부산일보 DB 혼잡하고 복잡한 공항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 일대. 사진은 김해공항 모습. 부산일보 DB

“뭐라고요?” 다나카 상은 어이가 없는지 잠시 말문을 닫고 내 얼굴만 바라보았다. 선원 교대 업무를 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호텔까지 남의 가방을 들고 온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기가 막히지만 잘못을 탓할 시간이 없었다. 공항 수하물 도착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니 남은 가방 하나와 승객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다시 공항으로 되돌아가는 순간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빨간 운동복과 한약첩을 볼 때 아무래도 가방 주인은 ‘야쿠자’ 같았다. ‘야쿠자’가 한국에서 보약을 지어가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다나카 상에게는 말도 못 붙이고 혼자서 큰 걱정을 했다. 안 맞아 죽으려면 뭐라고 사과를 해야 하나? 가라오케에서 놀 때는 청산유수로 떠들던 일본말이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일본 존댓말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 수첩을 꺼내 생각나는 대로 메모를 했다.

-마코도니 모우시와케 고자이마센데스가 와다시노 후쮸이데 고메이와꾸오 오카케다시 히다즈라 큐사쿠니 존지마스. 도우죠…….(참으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제 부주의로 폐를 끼쳐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부디…….)

공항에 도착했다. 분실물 담당계로 찾아가니 여직원이 내 가방을 지키고 있었다. 두 가방을 맞대놓고 보니 똑같은 제품이었고 부피도 비슷했다. ‘야쿠자’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수하물 가방을 찾을 때 아주 드물게 가방을 잘못 들고가는 경우가 있는데 김종찬 해양소설가에게 그런 해프닝이 있었다. 사진은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에서 가방을 찾아가는 여행객들 모습. 부산일보 DB 수하물 가방을 찾을 때 아주 드물게 가방을 잘못 들고가는 경우가 있는데 김종찬 해양소설가에게 그런 해프닝이 있었다. 사진은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에서 가방을 찾아가는 여행객들 모습. 부산일보 DB

내가 내민 수하물표 번호를 확인한 공항 여직원은 다나카 상을 의식해서인지 가방을 바꿔 가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사과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두 시간 동안이나 기다리게 해놓고…. 잠시 후에 ‘야쿠자’가 나타났다. 나이는 40대 초반쯤 돼 보이고 호리호리한 체격에 선량한 인상이었다. ‘야쿠자’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그래도 “고멘구다사이(실례합니다)” 하며 구십 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차 안에서 연습했던 말을 떠듬떠듬 뇌까렸다.

“마코도니 모우시와케 고자이마센데스가…….”

그러자 가방 주인이 듣기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도 한국 사람입니다. 우리말로 하세요. 빨리도 호텔에 도착하셨군요. 무거운 가방 끌고 오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아이구, 이거 너무 죄송해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명함이라도 한 장 주시면….”

“그런 거 없습니다. 가방 찾았으면 됐지요. 그럼 업무나 잘 보시고 건강하게 귀국하셔요.“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가방을 끌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다나카 상과 공항 여직원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혼자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제발 나잇값 좀 해라! 일본말 좀 한다고 촐랑거리다가 이 꼴이 됐지 뭐야! 철 안 드는 인간은 수염이 세 가지가 나도 어쩔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꼴이람. 글/김종찬 해양소설가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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