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성난 백인 남성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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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잃을 것이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잃을까 봐 두려움을 느낄 때 일으키는 것이다.” 〈성난 백인 남성〉(2013년)의 저자 마이클 키멜의 말이다. 그는 미국 남성, 특히 경제력을 상실한 백인 남성들의 박탈감에 주목했다. 이 ‘성난(angry) 백인 남성들’의 위기감이 2016년 미 대선에서 정치 신인에 가까웠던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당시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점쳤던 국내에서도 ‘트럼프 쇼크’를 경험해야 했다.

미국은 다민족 국가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복합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데 백인은 자신들이 지배 그룹으로 국가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런데 민권운동과 다문화주의의 약진으로 그 지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백인·남성·블루칼라(생산직 노동자)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심했다.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뺏기고 주류 사회에서 밀려났다고 여긴다. 이들이 미시간·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 등 중서부 러스트 벨트(제조업 쇠퇴지역)를 중심으로 뭉친 결과가 트럼프 집권이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은 미국을 다시 백인의 나라로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트럼프 집권은 비백인들을 자극했다. 인종차별과 백인 우월주의가 일상적 범죄가 됐다. 소수인종과 여성에 대한 혐오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분열과 증오의 정치가 워싱턴의 뉴노멀이 됐다. 사회통합의 실패는 소수인종과 여성 등 반대 진영의 결집을 불렀다. 입국 금지령에 저항하는 이민자와 무슬림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투쟁을 통해 이룬 사회적 존중과 입지를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이들은 다시 뭉쳤다. 성난 백인 남성들이 트럼프에게 권좌를 가져다줬다면 흑인의 분노가 2020년 트럼프 낙선을 이끌었다.

미국 대선 시계가 다시 돌아 공화당의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트럼프가 압승하며 대세론을 입증했다. 여론조사 결과 바이든과의 양자 대결에서도 앞선다. 다보스포럼에서 트럼프의 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세계 각국의 위기감이 높다. 당장 우리로서는 남북 관계가 문제다. 트럼프는 최근 유세에서 “김정은은 매우 똑똑하고 그와의 정상외교를 통해 핵전쟁을 막았다”는 말들을 서슴없이 한다. 트럼프가 집권하면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최근 북한의 막가는 태도도 이런 트럼프의 집권 가능성과 무관하지 않아 보여 걱정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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