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군의 생생건강토크] 분만병원이 사라지는 이유

김병군 기자 gun39@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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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군 의료산업국 국장

‘분만 의료사고가 터지면 배상금 10억 원은 각오해야 한다.’

얼마 전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아이가 뇌손상을 입어 의사 과실이 인정되면서 12억 원을 배상하는 판결이 있었다.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받은 후에 신생아가 사망한 사건으로 병원 측이 약 4억 원을 배상한 사건도 있었다. 2030년쯤 되면 배상금이 20억 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분만은 불가피하게 출혈이 많기 때문에 예측불가능한 사고들이 많다. 분만실에서 촌각을 다투는 과정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이 안 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다 보니 산부인과 의사들은 항상 의료사고와 소송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산부인과 소송의 경우 신생아의 평생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배상액이 엄청나게 크다. 한 번의 의료사고로 인생이 날아갈 수도 있다.

의사단체가 산부인과 전공의와 전임의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응답자 47%가 ‘전문의 취득 및 전임의 수련 이후에 분만을 하지 않겠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중 79%는 ‘분만 관련 의료사고 우려 및 발생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기를 낳다가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져서 10억 원대 소송이 들어오는데 누가 산부인과 의사가 되겠다고 하겠는가. 산부인과 지망자가 없는 것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지난해 5월 국가가 불가항력 분만사고에 대해 피해보상 전액을 부담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국가가 지원하는 보상금은 최대 3000만 원에 불과하다.

산부인과의 저수가도 고질적인 문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분만 수가는 총 분만 비용 기준으로 약 250만 원 정도다. 반면 미국은 약 2200만 원, 일본 약 700만 원으로 우리가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제왕절개 수술도 포괄수가제(DRG)로 묶여 있다. 진료 내용에 관계없이 수가가 일정 금액에 묶여 있다는 말이다. 수술 과정에서 유착방지제를 써도 공식적으로 인정을 해주지 않는다. 출산인구는 줄고 수가는 낮으니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분만 대신에 성형이나 미용진료 파트로 속속 빠져나가고 있다.

부산의 한 산부인과 병원장은 “최근 사법부가 불가항력 분만사고에 대해 거액의 배상금을 묻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의료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어렵게 분만을 유지하던 병원들이 분만 진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지난 18일 부산 기장군에 있는 정관일신기독병원이 심각한 저출생 현상과 전문의 수급의 어려움을 이유로 분만진료 중단을 선언했다. 부산만의 일이 아니고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보건당국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김병군 기자 gun39@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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