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 식당의 기적…“라면 한 봉지보다 싸게 맛난 밥 먹을 수 있어요”
따뜻한 마음 모아 다시 문 연 ‘500원 식당’
10분 만에 만석인 동네 맛집으로 소문나
“내일 또 올게요” 아이들 얼굴 미소 가득
'응원합니다' 등 메시지 담아 후원 쇄도
“라면 한 봉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맛난 점심을 먹을 수 있어요.”
차가운 칼바람이 세차게 분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을 따라 길게 이어진 골목길. ‘로망스 다리’로 유명한 곳이지만 연일 이어진 한파 탓인지 인적이 드물다. 조용한 동네가 눈에 익을 때쯤 유독 어수선한 곳이 눈에 띈다. ‘블라썸 커뮤니티센터’라고 적힌 건물 1층. 내부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더욱 북적북적하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입학한 것처럼 보이는 왜소한 아이부터, 어른만큼 키가 큰 학생들까지 한 줄로 서서 친구들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앗싸! 내가 좋아하는 반찬 나왔다” “난 두 그릇 먹어야지” “좀 빨리 올걸” 미소 가득한 아이들을 넘어 고개를 젖히니, 약 30평 정도 내부에 테이블 7개 놓여 30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이미 만석이다. 앉아 있는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밥을 뜬다고 여념 없다.
이곳에서 만난 김강빈(16) 군은 “부모님이 맞벌이 중이라 방학이면 동생과 라면 끓여 먹곤 했는데, 집 근처에 이 식당이 생겨 거의 매일 밥 먹으러 온다”면서 “어머니가 차려준 밥만큼 맛있는 데다 싸고, 메뉴도 다양하다”며 입맛을 다셨다. 오전 11시 30분에 문을 여는 이 식당은 10분도 채 안 돼 30명 넘게 찾는 등 문전성시다. 이곳은 이미 동네 맛집으로 소문 났다.
인근 초등학교 4학년생 정민주(12) 양은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식당에)오면 딱 문 열 시간이다.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고 2층 작은도서관에 들러 책도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내일 또 올거다”며 웃어 보였다.
방학에 부부 맞벌이 등으로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마음이 모여 작은 식당이 차려졌다. 단돈 500원에 넉넉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500원 식당’이다. 기본 반찬 4가지에 밥과 국·찌개가 나온다. 방학 중 월·화·목·금 4일간 운영되며, 매번 5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다녀간다. 애초 무료로 운영됐지만 ‘공짜 밥 먹는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것을 걱정해 최소 금액인 500원을 받고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에 따르면 500원 식당은 2022년 여름 방학에 처음 문을 열었다. 경남도와 창원시의 ‘공유경제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돼 보조금 1000만 원을 받으면서다.
다만 사업이 일회성에 그치면서 그해 겨울은 문을 닫아야 했다. 이듬해 여름 창원행복신협에서 700만 원을 후원하면서 다시 온정의 불씨를 살렸다. 그러나 이마저 방학 기간 한 차례 운영 경비에 그쳐 겨울에 다시 셔터를 내릴 판이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 팔도에서 개인 기부가 쇄도했다. 후원 계좌에 적게는 1원에서 많게는 200만 원까지 입금되며 삽시간에 3350만 원이 모였다. 입금자명엔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등 격려의 목소리가 붙었다. 지역 기업들도 발 벗고 나섰다. 효성중공업과 (주)로만시스에서 각 1000만 원을 쾌척, 총 2650만 원이 모였다. 올겨울 1000만 원을 쓰고 남은 5000만 원으로 2~3년은 버틸 수 있지만, 근본적인 자금 공급 구조를 확보하진 못한 상황이다.
전수진 조합 사무국장은 “방학뿐만 아니라 학기 중 주말에도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면서 “우리 아이들이 밥 굶지 않도록 언제까지나 든든한 한 끼를 차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