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무대 선 정일우 “큰 도전이었지만 배우로서 욕심났어요”
‘거미여인의 키스’서 몰리나 役
연극 매력 커… 도전 계속할 것
배우 정일우가 연극 무대에서 또 한 번의 연기 확장을 이어간다. 연극 ‘엘리펀트 송’ 이후 5년 만에 선택한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다. 이 작품에서 그는 남성이지만, 자신을 여자라고 믿는 ‘몰리나’를 연기했는데 그 모습이 흥미롭다. 2일 서울 종로구 예그린씨어터에서 열린 프레스콜 간담회에서 정일우는 “몰리나 역할은 큰 도전이었지만 배우로서 욕심이 났다”며 “유리알처럼 섬세한 캐릭터를 잘 만들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마누엘 푸익의 세계적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983년 연극이 초연한 뒤 영화,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념과 사상이 전혀 다른 몰리나와 발렌틴이 감옥에서 만나 서로를 받아들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대척점에 있는 것 같았던 두 인물이 상대를 이해하고 스며드는 과정은 관객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정일우는 몰리나의 심연의 감정부터 말투와 표정, 손짓 등 여성적인 외형까지 잘 표현해내 극의 맛을 살린다. 정일우는 “제가 가진 색깔들이 몰리나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며 “약해 보이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마음에 솔직한 캐릭터로 생각하고 방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의 백미 중 하나는 영화 이야기를 할 때 한 마리의 ‘카나리아’ 같은 몰리나의 모습이다. 배경이 감옥이고, 1970년대 아르헨티나 정치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들이 곳곳에 나와 자칫 어두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몰리나의 부드러운 매력으로 환기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매력이 더해지는 건 덤이다. 압도적인 대사량도 눈에 띈다. 정일우는 “2인극이라 인물의 감정을 더 섬세하고 깊게 표현할 수 있다”며 “처음엔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상대 역과 감정, 대화를 살펴야 해서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몰리나와 싱크로율을 100%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한 작품을 서른 번 넘게 반복 공연하면서 캐릭터의 깊이를 알게 되고 배우는 점도 많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각오도 전했다. 정일우는 “개막한 지 얼마 안 돼서 항상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끝날 때까지 그럴 것 같다”며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어렵지만,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연극 무대에서 관객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어 좋아요. 배우로서 배울 수 있는 점도 많고요. 기회가 된다면 연극 무대에도 평생 서고 싶습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