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몸뚱이 만져라도 보게…” 제2해신호 실종자 가족 하염없는 기다림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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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기관장 윤 씨 30년 넘게 뱃일
이혼한 딸 손주 2명 뒷바라지 하려
“힘든 기색 않고 더 열심히 일했다”
엉터리 위치보고·허술한 대응 분통

통영시청 제2청사 2층에 마련된 제2해신호 실종 선원 가족대기실. 날벼락같은 비보에 굳게 닫힌 출입문 너머엔 무거운 침묵이 감돈다. 김민진 기자 통영시청 제2청사 2층에 마련된 제2해신호 실종 선원 가족대기실. 날벼락같은 비보에 굳게 닫힌 출입문 너머엔 무거운 침묵이 감돈다. 김민진 기자

“이혼한 딸 손주들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입니다.”

지난 주말, 경남 통영시청 제2청사 2층에 마련된 제주 선적 제2해신호 실종 선원 가족 대기실. 사고 발생 열흘이 지나도록 행방이 묘연한 기관장 윤승진(가명) 씨 가족들은 감정이 북받친 듯 흐느끼다 이내 눈물을 쏟아냈다. 친누나 A 씨는 “바다가 이렇게나 무서운지 이제야 알았다. 한평생 고생만 한 내 동생 몸뚱이라도 한번 만져라도 보게 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성실하고 인정 많던 윤 씨는 30년 넘게 뱃일을 했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기는 데다, 일머리도 좋고 동작도 빨라 같이 일하자는 곳도 많았다고 한다. 특히 3년 전 하나뿐인 딸이 이혼하자 할아버지가 손주들 뒷바라지 하겠다며 단 한 번도 힘든 기색 없이 더 열심히 일했다고 했다. 아내 B 씨는 “딸 하나에 손주가 3살, 6살이다. (딸이) 둘째를 가졌을 때 갈라섰다. (딸은) 아빠 믿고 애 둘을 다 데리고 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주변 선단선의 엉터리 위치보고와 당국의 허술한 대응에 구조 적기를 놓친 것에는 불만을 토로했다. 통영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제2해신호가 실제 전복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은 지난 8일 오후 8시 55분께다. 항적기록장치(e네비게이션) 분석 결과, 이 시점 이후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로부터 1시 48분 후인 오후 10시 43분, 제주어선안전조업국에 제2해신호 위치보고가 들어왔다.

어선안전조업법 시행령에 따라 풍랑특보가 발효된 해역에서 조업 중인 어선은 12시간 간격으로 위치를 보고해야 한다. 제주어선안전조업국이 보고를 요청하자 제2해진호 선단장이었던 105명진호는 레이더에서 사고 선박의 어구를 표시한 전자 부이를 제2해신호로 착각해 ‘정박 중’이라고 통지했다. 이로 인해 당국은 9시간이 지난 뒷날 지난 오전 6시가 넘어서야 사고 사실을 인지하면서 구조 대응이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급 상황에 대비해 제도화한 각종 장비도 무용지물이었다. 정부는 2011년부터 모든 어선에 GPS 기반 선박입출항자동신고장치(V-PASS)와 자동선박식별장치(AIS) 등 ‘선박위치발신기’ 부착을 의무화했다.

V-PASS는 외부에 설치된 송·수신 안테나가 거치대에서 분리되거나 어선이 좌우로 70도 이상 기울면 어선 위치와 구조 신호를 자동으로 발신한다. 그런데 신호 통달(송수신)거리가 30km 남짓이라 먼바다에서 조업하는 근해어선엔 효용성이 떨어진다. 제2해진호도 마찬가지였다. 사고 전후로 해경 상황실엔 조난 신호가 닿지 않았다.

11일 통영항으로 예인된 제2해신호 선체. 부산일보DB 11일 통영항으로 예인된 제2해신호 선체. 부산일보DB

윤 씨 가족들은 항적 기록을 토대로 “시간대별로 위치가 찍혀있다. 이게 끊겼다면 이상해서라도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사고 직후에 그랬다면 사람이 죽진 않았을 것 아니냐. 아니 시신이라도 건졌을 거 아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하루 종일 (바다에) 떠 있다는 생각에 억장이 무너진다”며 “제발 찾기만 해 달라. 찾아만 주면 한이 없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20t급 근해연승어선인 제2해신호는 지난 7일 옥돔 조업 차 다른 어선 5척과 선단을 꾸려 제주 한림항을 출항했다. 당시 선장과 윤 씨 등 한국인 2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7명 등 9명이 승선했다. 이후 9일 오전 6시 40분께 욕지도 남쪽 37해리(약 68km) 해상에서 전복된 채 발견됐다. 승선원 중 선장과 외국인 4명이 우선 구조됐지만 모두 사망 판정을 받았고, 윤 씨를 포함한 5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통영해경은 실종자 수색과 함께 사고 원인 규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8개 기관과 인양한 선체 합동정밀감식을 벌였고, 각 기관에서 분석한 자료를 종합해 원인을 밝혀낼 계획이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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