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당명 속 숨은 사연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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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 관련 각종 여론조사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조국혁신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중심인 정당이다. 처음에는 당명으로 조국신당을 쓰려고 했는데 중앙선관위가 제동을 걸었다. 현역 정치인의 이름은 당명에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혁’ 자 하나 넣었을 뿐인데, 조국혁신당은 어째서 가능할까. 조국신당은 ‘조국이라는 사람의 당’이지만 조국혁신당은 ‘조국(祖國)을 혁신하려는 당’이라서 가능하다는 게 중앙선관위의 설명이다.

당명에는 이처럼 다양한 사연이 녹아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선 숱한 정당이 명멸했는데, 1980년대까지는 민주, 자유, 사회, 민중, 진보 등 이념적 단어들이 주로 당명으로 채택됐다. 이후 정치적 흐름에 따라 통합이나 국민 등의 단어도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훨씬 세련된 형태로 변했다. 광고·마케팅 전문가 등 소위 ‘프로’들이 동원된 것이다.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 그랬다. 국민의힘처럼 일반 공모를 통해 당명을 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색적인 군소 정당의 출현도 잦았는데, 올해 그런 현상이 특히 두드러졌다. 가가국민참여신당처럼 ‘가’ 자를 앞세운 당명이 유달리 많은 게 그 하나다. 여기엔 깊은(!) 전략이 숨어 있다. 총선에서 원외 정당은 현역 의원 수가 아니라 당명의 가나다 순으로 기호가 결정된다. 조금이라도 앞선 번호를 배정받으려는 전략인 것이다.

지향점을 짐작키 어려운 당명도 여럿이다. 소나무당이 그렇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옥중 창당한 정당인데, 과거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으로 바뀌기 전 당명 후보의 하나로 거론된 민주소나무당에서 따온 이름으로 알려졌다. 태건당도 있다. 일종의 종교 정당이라 하겠는데, 대표 총재가 대우주의 절대자이자 태초의 조물주임을 자처하는 인물이다. “한류로 미래 비전을 세우자”는 한류연합당, “양심 정권 창출이 목표”라는 홍익당도 눈길을 끈다. 대한민국당은 아예 우리 국호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대한국민당과 헷갈리기 십상이다.

이런 정당들이 쏟아지는 통에 이번 22대 총선에서 투표용지 최장 기록이 세워질 전망이다. 21대 총선 때 ‘48.1cm’가 이전 기록이었는데, 올해 중앙선관위 등록 정당 수가 21대 때 51개를 훨씬 초과했기 때문이다. 이를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유권자로선 어쨌든 선택지가 넓어지는 셈이고, 이색적이고 기발한 당명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지 알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테니 말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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