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과 동상에 깃든 부산 역사의 갈피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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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상, 옛그림 속 부산을 거닐다’
이현주 문화재위원, 46편 묶어
“18~19세기 동래 예술 대단해
동상 건립에 부산 예술가 참여”

겸재 정선파 화풍을 보여주는 18세기 ‘김윤겸 필 영남기행화첩’ 중 몰운대 부분. 동아대 석당박물관 제공 겸재 정선파 화풍을 보여주는 18세기 ‘김윤겸 필 영남기행화첩’ 중 몰운대 부분. 동아대 석당박물관 제공

회화사를 전공한 부산시와 경남도 문화재위원인 이현주 범어사성보박물관 부관장이 <완상, 옛그림 속 부산을 거닐다>(두손컴)를 냈다. 10여 년 써온 46편의 글 한 데 묶었다. “부산 사람이 제작했거나, 부산을 그렸거나, 부산을 거쳐 갔거나, 부산에 남겨져 부산 역사를 말해주는 문화재와 문화재급 작품들에 대한 얘기를 모았어요.”

부산의 동상들에 대한 이 문화재위원의 글은, 매체 연재 당시 새로운 관심의 환기로 많이 알려졌었다. 부산의 동상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이승만 정부 때인 1955년 건립된 용두산공원 이순신 동상(조각가 김경승)이다. 그다음은 박정희 정부 때 충렬사 성역화 사업에 맞춰 1977년 정발 동상이, 1978년 송상현 동상이 차례로 세워졌다. 부산의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이 이들 사업에 참여했는데 소설가 김정한이 송상현 동상, 시인 허만하가 정발 동상 건립문을 썼으며, 그 글씨는 오제봉과 배재식이 각각 썼다(참고로 아동문학인 이주홍은 충렬사 정화기념비문, 시인 김규태는 윤흥신 동상 건립문을 썼고 그 글씨는 각각 배재식과 한형석이 썼다).

부산에서 가장 역동적인 형상의 동상이라는 박재혁 동상. 한인성 조각가의 작품이다. 구주환 제공 부산에서 가장 역동적인 형상의 동상이라는 박재혁 동상. 한인성 조각가의 작품이다. 구주환 제공

정발 동상을 만든 조각가는 한인성 부산대 교수였는데 송상현 동상을 만든 조각가 김정숙 당시 홍대 교수의 제자였다. 한인성은 부산의 동상 작업 다수를 했으며 1981년 사명당 동상(어린이대공원), 1998년 박재혁 동상(〃) 등이 그의 작품이다.

이 부관장은 옛 부산이 담긴 문화재를 다수 소개한다. 18세기 겸재 정선파 화풍을 보여주는 ‘김윤겸 필 영남기행화첩’ 14장에는 부산 절경이 3장 포함돼 있는데 몰운대 영가대 태종대가 그것이다. 이 부관장은 “3장 모두가 빼어나며, 그중 몰운대 그림에서는 어떤 경이로움이 느껴진다”고 했다. 19세기 ‘농가월령도 12곡 병풍’도 ‘동래부 생산 예술품’으로 주목된다고 한다. “동래 한학자 박주연에 의해 주문 제작된 것인데 동래 무임(武任) 화가 이시눌이 그렸어요. 놀라운 것은 12폭 그림에 오륜대 일원이나 이섭교 등 동래부 실경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에요.”

이 병풍 그림을 그린 이시눌은 대단한 동래부 화가였다. 딱 1점밖에 없는 1834년 작 ‘임진전란도’를 그린 화가다. 널리 알려진 변박의 1760년 ‘동래부순절도’ ‘부산진순절도’, 변곤의 1834년 ‘동래부순절도’가 같은 반열의 작품이다. 그들은 모두 동래부 화가였다.

순종 황제의 비인 순정효황후가 한국전쟁 때 부산에 가져온 ‘채용신의 백납병’. 부산박물관 제공 순종 황제의 비인 순정효황후가 한국전쟁 때 부산에 가져온 ‘채용신의 백납병’. 부산박물관 제공

당대 동래부의 예술적 팽창은 진풍경이었다. 일례로 부산박물관 소장품인 이시눌의 ‘묵국도’ ‘묵포도도’ ‘월매도’는 거침없는 필치로 자유자재한 수묵의 농담을 구사했는데 이 그림들은 동래지역의 사적 교류 예술품으로 보인다고 한다. 또한 동래부는 조선통신사 사행의 거점이자 예술품 해외교류의 거점이었다. 동래부 무임 화가였던 변박 이시눌 변지한, 호(號)만 알려져 무명의 동래부 화가로 여겨지는 상현 괴원 노포 송수관 내산암 춘재 운암 하담 해옹 만취 석산, 붓으로 당대 조선을 석권한 김명국 최북 이성린 김유성 이의양 등의 작품이 동래부와 왜관을 중심으로 한·일을 오갔고, ‘조선시대의 한류’로 전해지고 있다.

간단치 않은 인연과 섭리로 부산에 온 ‘의왕영왕책봉의궤’는 보물로 세계기록유산이다.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제공 간단치 않은 인연과 섭리로 부산에 온 ‘의왕영왕책봉의궤’는 보물로 세계기록유산이다.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제공

다양한 인연으로 부산에 오게 된 문화재도 있다. 부산박물관 소장품 ‘채용신의 백납병’은 조선 후기 최고의 초상 화가 작품이다. 순종 황제의 비인 순정효황후가 한국전쟁 때 부산에 피난 오면서 가져왔을 정도로 값진 작품인데 해운대에 있던 증조부 묘소를 잘 관리하는 집안에 준 것이 인연이 돼 현재 부산에 있다.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소장품 ‘의왕영왕책봉의궤’는 보물로 세계기록유산이다. 대한제국 선포 뒤인 1900년 고종 황제의 둘째 셋째 황자를 각각 의왕과 영왕으로 책봉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인데 황실 유물이 부산의 순교자박물관에 오게 된 사연에서 역사적 곡절을 뛰어넘는 신앙의 섭리마저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문화재에 깃든 의미와 속 얘기, 그것을 둘러싼 비화가 다큐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처럼 고아하고 고소하게 깨알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 부관장은 “대한도기, 부산의 시어(市魚) 고등어에 대한 책도 쓰고 싶다”고 했다.

부산시와 경남도 문화재위원인 이현주 범어사성보박물관 부관장. 부산일보 DB 부산시와 경남도 문화재위원인 이현주 범어사성보박물관 부관장. 부산일보 DB
<완상, 옛그림 속 부산을 거닐다>. 두손컴 제공 <완상, 옛그림 속 부산을 거닐다>. 두손컴 제공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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