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삼겹살’만 난무…‘꼬리가 몸통을 뒤흔든’ 총선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공약·비전 등 대형 쟁점 없는 이례적인 4·10 총선
심판 정서 자극하는 사소한(?), 감정적 이슈가 선거 어젠더 장악
정권의 ‘불통’, 야당 대표 가벼운 언행이 토대 제공한 측면 불구
‘후보 검증’ 등 선거 기본 작동 안해 적잖은 후폭풍 예고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 등 민주당 의원과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윤영덕 대표 등이 8일 경기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를 방문, 투표소 대파반입 금지조치 등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 등 민주당 의원과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윤영덕 대표 등이 8일 경기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를 방문, 투표소 대파반입 금지조치 등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연합뉴스

4·10 총선은 공약, 비전, 이념 등 선거 구도를 선명하게 가르는 대형 쟁점이 없는 이례적인 선거였다. 여야가 막판에 비용 추계도 없는 공약들을 쏟아냈지만, 유권자들은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어차피 실행 의지가 불투명한 선심성 공약으로 치부하는 듯했다. 대신 여야의 ‘정권 심판론’, ‘이·조 (이재명·조국) 심판론’ 프레임 속에 ‘대파’, ‘삼겹살’ 등 어찌 보면 사소한, 감정적 이슈들이 선거판을 장악했다. 그야말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웩더독’ 선거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총선 기간 표심을 가장 흔들었던 단어를 꼽자면 단연 ‘대파’가 아닐까 싶다. 미국 최대 통신사인 AP가 지난 5일 한국 총선 이슈를 다루는 기사에서 3대 키워드를 꼽으면서 가장 첫머리에 올린 단어도 대파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달 18일 ‘대파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발언은 말실수에 가까웠다. 윤 대통령 스스로도 “다른 데서는 이렇게 싸게 사기 어려울 것 아니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 정도는 돼야 소비자들이 맘 놓고 대파를 살 수 있을텐데” 정도 됐어야 할 발언이 다소 부적절하게 표현됐고, 여기에 야당의 앞뒤 맥락을 무시한 집요한 공세가 이어지면서 대파 실언은 ‘대파 파동’으로 비화됐다. MBC의 한 예능 프로그램인 9주년 결방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도 마찬가지다. 결방 결정은 선거 개입이라는 오해를 차단하기 위한 방송사 자체 판단일 뿐인데, 비례대표 기호 9번인 조국혁신당이 ‘9틀막’이라며 여권 개입 의혹을 제기하자 삽시간에 기정사실처럼 퍼져 버렸다.

물론 사소해 보이던 두 사안이 선거 핵심 쟁점으로 부각된 토대는 여권이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물가로 인한 서민 고통이 가중되는 와중에 ‘이종섭·황상무’ 논란으로 불통 이미지를 쌓아가던 윤 대통령이 대파값 발언으로 정서적 ‘임계점’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결방 논란 역시 비판 보도를 수사와 각종 징계 조치로 지나치게 옥죈 데 대한 역작용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대파, 결방 공세에 열을 올리는 더불어민주당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최근 논란이 된 이재명 대표의 ‘삼겹살’, ‘일하는 척했네’ 발언을 둘러싼 논란은 이 대표의 평소 잦은 말 바꾸기와 가벼운 언행이 파장을 키운 측면이 있지만, 집권여당이 연일 ‘십자포화’를 가할 정도의 사안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조그만한 꼬투리라도 키워 심판 정서에 기름을 붓는 것 외에 유권자들에게 하등의 유익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렇듯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선거이다 보니 정책, 비전 경쟁은커녕 기본적인 ‘후보 검증’도 작동하지 않는 분이기다. 갈수록 논란이 거세지는 양문석 후보의 ‘편법 대출’ 의혹, 김준혁 후보의 ‘막말’은 이전 선거에서라면 벌써 여론 시장에서 ‘부적격’ 판단을 내릴 법한 사안이지만, 두 후보를 배출한 정당은 “판세에 영향이 없다”며 비판 여론을 무시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총선은 정당 간 대결이기도 하지만 입법부라는 거대 권력을 운용할 선량을 뽑는 과정인데, 이런 의미는 깡그리 무시되는 듯 하다”며 “선거 이후 진영 대립의 격화, 전반적인 도덕성 하락에 따른 입법부 불신 심화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