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참전 유공자 푸대접… 수당 인상·처우 개선 해달라”
허경 6·25 참전 유공자회 부산시지부장
2020년 취임, 4년간 또 지부 이끌어
유공자 복지 증진, 6·25알리기 교육
유족회원 자격 승계 입법화에 앞장
“6·25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은 정말 고생했어. 젊은이들은 이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정부에서도 무관심한 것 같아. 정말 눈물 나도록 섭섭해.”
2020년부터 대한민국 6·25 참전 유공자회 부산시지부를 이끌며 올해부터 4년 또 연임하는 허경(93) 지부장을 방문했다.
부산 동구 초량동 보훈회관 2층에 있는 6·25 참전 유공자회 사무실에 들어서자 허경 지부장은 온화한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구순이 넘은 연세에도 곧은 자세와 또렷한 눈빛, 큰 목소리의 건강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고령인 탓에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끼고 있지만 눈을 감고 천천히 기억을 끄집어냈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새로운 가슴 아픈 사연도 나왔다. 한편으론 전쟁의 아픔을 견디며 꿋꿋이 살아왔던 지난 70여 년 인고의 세월도 묻어난 듯 보였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전쟁터로 갔다. 모두가 다 그런 마음으로 갔다. 젊은이들이 그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지난해 국가보훈처에서 지급한 상아색 예복을 차려입은 허경 지부장의 목에는 호국영웅 훈장이 걸려 있고 예복 왼쪽에는 전장에서 헌신한 공로를 인정하는 국가유공자 기장이, 오른쪽에는 각종 약장이 달려 있었다.
부산 동구 초량동 출신인 허 지부장은 1933년생이다. 1950년대 당시 중학교 5학년 학생이었던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다.
그는 “당시 중학교 학제가 6년제였는데 부산중학교 5학년이었다. 국군으로 소집돼 부산훈련소에 갔더니 동급생과 교복을 입은 어린 소년들이 수백 명이었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5일간 교육을 받고 육군통신학교로 가 1개월 교육 후 하사로 참전했다. 통신 요원과 특공대원으로 지리산과 태백산 등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장교로 20년 근무, 소령으로 예편했다. 1976년 부산 강서구 명지동 면장, 1978 사상구 모라동 동장을 맡으면서 공직자로서 지역 사회에도 헌신했다. 2013년 부산시장상과 2019년에 부산일보 보훈대상을 수상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어느덧 74년이 지났다.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학생과 청년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며 “그럼에도 이들의 헌신적인 영웅담은 점차 국민들에게 잊혀 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그는 4년째 부산시지부장을 맡아 참전 유공자의 복지 증진 활동도 이어왔다. 또 매년 1회 전적지 순례와 6·25전쟁 바로 알리기 교육을 현재 7038개 학교에서 가졌다. 이와 함께 고령화에 따른 단체 존립 위기로 유족회원 자격 승계를 위한 국회 입법화 추진에 발벗고 나섰다.
“참전 유공자는 대부분 구순을 훌쩍 넘겼지만 참전 명예수당(부상이 없는 유공자)으로 월 42만 원을 받는다. 과연 이 금액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면서 “국가를 위해 목숨 내건 유공자를 위해 수당 인상, 처우 개선 등 정부 차원에서 재고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참전 유공자 제복을 입고 도시철도나 버스를 타면 자리 양보나 예우가 없어 너무 서운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전 유공자들이 이렇게 푸대접 받는 것을 보면 요즘의 군인들이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킬까? 크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야.”
허 지부장은 “6·25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고취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국가는 철저한 안보 태세 마련하고, 국민들은 철저한 안보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글·사진=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
강성할 기자 sh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