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근거 대라” 재판부 요구, 의대 증원 변수되나?
의대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서
고법 “10일까지 자료 제출” 요구
정부 “향후 일정 차질 없게 대응”
의료계 “정부 자료 철저히 검증”
의대생 낸 가처분 신청은 기각
법원이 의과대학 정원 확대 규모를 2000명으로 정한 과학적 근거 제출을 요청하면서 정부가 발 빠른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강제력 없는 요구에도 “빠른 시일 내에 충실히 자료를 제출하겠다”며 내년도 의대 입학 모집에 차질이 갈 변수를 차단하려는 모양새다. 정부에 의대 증원 최종 승인을 이달 중순까지 보류하라고 권고한 법원이 의대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 이목이 쏠릴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1일 “의대 2000명 증원에 대한 근거를 충분히 제시할 수 있다”며 “빠른 시간 안에 자료를 충실히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도 “근거를 충실히 소명할 것”이라며 “보건복지부와 논의해 제출 기한인 10일까지 자료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근거 자료 준비에 나선 건 전날 법원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지난달 30일 의대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심문에서 정부에 2000명 증원을 결정하게 된 과학적 자료와 회의록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관련 자료를 5월 10일까지 제출하면 5월 중순까지 결정하겠다”며 “그전에는 최종 승인이 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앞서 의대 교수·전공의·의대생·의대 수험생 등 18명은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 등이 결정한 의대 증원에 대한 집행정지를 법원에 신청했다.
정부는 내년도 의대 모집 정원 확정에 차질이 가지 않도록 빠른 대응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 각 대학은 증원 규모를 반영한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제출했다. 막판까지 고심하던 전남대도 1일 증원 규모를 결정했다. 대학들이 결정한 모집 정원은 이달 중순 예정된 대교협 심의를 거쳐야 최종 확정된다.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달 말 대학별 모집 요강 공고에 큰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하지만 인용하면 본안 판결 때까지 정원 승인이 늦춰질 수 있다. 법원 판단이 정부 의대 증원 계획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이날 “사법부 판단에 대해 의료계는 환영한다”며 “정부가 근거 자료를 제출하면 국내외 전문가 풀을 구성해 철저하게 검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2035년 의사가 1만 5000명 부족해진다는 연구 결과에 맞춰 내년도부터 5년간 의대 입학 정원을 3058명에서 5058명으로 확대하는 방침을 세웠다.
법원이 정부에 자료 제출을 요청하는 변수가 생겼지만, 의대생들이 각 대학 총장에게 증원을 멈추라고 요청한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다.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부장판사 김상훈)는 강원대·제주대·충북대 등 국립대 의대생 총 485명이 각 대학 총장·대교협 회장에게 제기한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의대생들과 대학총장·대교협이 사법 상 계약 관계가 있다고 볼 자료가 없다”며 “총장과 ‘재학 계약’이라는 사법상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소명할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입시 계획 변경이 의대생들 주장처럼 고등교육법 위반이라 무효라고 하더라도 입학 정원 증가에 따른 의대생들 법적 지위에 불안과 위험이 발생하게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의대 증원 논란에 법원이 가세한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에는 신임 회장이 1일 취임했다. 강경파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신임 회장을 중심으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임 회장은 당선 전부터 “저출생으로 의사 정원을 500~1000명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