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여성의 정치적 평등
여성 대통령은 바야흐로 전 세계적 흐름이다. 지난 2일(현지시간) 멕시코 대선에서 사상 첫 여성 대통령(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탄생했다. 멕시코는 남성 우월주의와 가부장제가 뿌리 깊은 ‘마초 국가’다. 그런 점에서 놀라운 성취다. 멕시코와 비슷한 시간에 진행된 아이슬란드 대선에서도 여성 대통령(할라 토마스도티르)이 당선됐다. 실질 권한은 총리가 갖고 있어 상징적인 자리이긴 하지만 의미가 남다르다. 역대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란 점도 그렇고, 이번 선거 2·3위 후보가 다 여성이란 것도 그렇다.
근년 들어 세계 곳곳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배출되는 모습이다. 유럽에는 슬로베니아의 나타샤 피르크-무사르 대통령(2022년), 그리스의 카테리나 사켈라로풀루 대통령(2020), 슬로바키아의 주사나 카푸토바 대통령(2019)이 있다. 다른 대륙으로 가면, 인도의 드라우파디 무르무 대통령(2022)이 눈에 띈다. 부족민 출신으로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의 할리마 야콥이 첫 여성 대통령으로 재임(2017~2023)한 바 있다. 남미에서는 페루 최초의 여성 대통령 디나 볼루아르테(2022)와 온두라스의 첫 여성 대통령 시오마라 카스트로(2022)가 현직이다. 아프리카의 첫 여성 대통령 배출 국가는 탄자니아(사미아 술루후 하산·2021)와 에티오피아(사흘레-워크 쥬드·2018)다.
여성 지도자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는 없다. 여건과 환경이 성숙해야 한다. 멕시코가 좋은 본보기다. 멕시코는 연간 1000명 정도의 여성이 살해당할 정도로 여성 대상의 범죄가 많은 나라다. 여성의 투표권도 1953년에 주어져 미국에 비해 30년이나 뒤처졌다. 하지만 의원 후보 할당제와 성평등법 도입을 통해 여성의 정치적 평등에 온 힘을 쏟았다. 정당들이 의회 의석 절반을 여성으로 채우는지 감시하고 여성 후보자에게 성차별 발언을 하면 선거권을 박탈했다. 그 결과 지금은 상·하원 의장, 수도인 멕시코시티 시장, 대법원과 중앙은행 수장이 다 여성이다. 31개 주에서 13개 주가 여성 주지사다.
우리로서는 바다 건너 먼 나라 일로 치부하기엔 속이 쓰린 풍경이다.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으나 무참한 실패를 경험한 아픔이 크다. 리더십을 갖춘 여성 지도자는 절대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정치 참여를 평등하게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먼저다. 싸움만 하는 우리 정치권의 좁은 시야는 아직 이 문제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어 보인다. 안타깝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