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시청은 ‘고통’…침 고이는 치킨의 향연 [OTT 씹어 먹기 '오도독']
2부작 다큐 ‘치킨 랩소디’
치킨으로 본 한국 문화
치킨. 듣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말이다. 단어에서 자글자글한 기름 소리와 바삭한 식감이 느껴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치킨 사랑’은 얼마나 극진한지, 치킨 프랜차이즈가 가격을 올린다는 소문만 들려도 온통 뉴스로 도배된다. 서민의 음식인 치킨으로 감히 ‘돈벌이’를 하려는 못된 업주를 일벌백계해 이 땅의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댓글이 큰 공감을 얻는다. 방송계에 유재석이, 프로게이머계에 페이커가, 축구계에 손흥민이 있다면 음식계에는 치킨이 있다.
넷플릭스와 KBS가 동시에 방영한 2부작 다큐멘터리 ‘치킨 랩소디’는 ‘한식 랩소디’ 시리즈 중 하나로 국민들의 ‘소울푸드’로 자리 잡은 치킨에 대해 다룬다. 이른바 ‘치느님’의 출생 비밀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기록한 일대기다. 미국에서 유래한 치킨이 우리 식탁과 친해지기까지의 과정을 사회적·경제적 맥락에서 들여다본다.
다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치킨 브랜드 수는 2022년 기준 683개다. 국내 치킨 판매 매장 수(약 4만 1000개)는 전 세계를 상대로 영업을 벌이는 맥도날드의 매장 수(약 3만 7000개)를 뛰어넘는다. 한 해 동안 치킨 시장에서 발생하는 매출액만 8조 원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치킨에 ‘진심’인 민족이다.
우리나라의 치킨 문화는 1960년대 전기구이통닭에서 출발했다. 퇴근길 아버지가 들고 오시던 종이 속 전기구이통닭은, 가족에 대한 그의 애정을 보여주는 소재로 묘사됐다. 1970년대 이후 국내에서 식용유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본격적인 치킨 산업이 시작된다. 반죽부터 기름, 양념의 차이에 따라 맛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것이다.
‘치킨 랩소디’는 미국 출생인 치킨이 우리의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을 문화적 맥락에서 충실히 설명한다. 가령 장아찌나 김치를 반찬으로 먹던 관습에서 세계 유일 ‘치킨무’ 가 탄생했다는 점이다. 또 양념치킨부터 간장치킨, 로제소스 치킨 등 소스 기술도 발전했다는 사실을 재미있게 풀어낸다. 프라이드치킨만 먹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양념치킨을 보고 ‘흑백 영화를 보다가 컬러 영화를 보는 기분’을 느꼈다고 하니, 가슴 한쪽에 애국심이 고개 든다.
이 다큐의 가장 큰 매력은 독보적인 ‘영상미’다. 치킨이 튀겨지는 과정을 하나하나 귀하게 촬영했다. 오프닝 영상부터 넘기기 아깝다. 반죽옷을 입은 닭이 기름에 들어가는 장면이나, 갓 튀겨 바삭한 치킨을 뜯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절로 입맛을 다신다. 튀김옷이 ‘바스락’하고 부서지는 소리도 생생해 ‘공복 시청금지’ 안내문이라도 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냉면, 짜장면, 삼겹살 등을 다룬 기존의 한식 랩소디 시리즈 중에서 가장 ‘보는 맛’이 좋은 에피소드다. ‘치킨 랩소디’는 다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1부에서 치킨을 다루고 2부에서는 다른 닭 요리로 옮겨가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감이 떨어져 아쉬움이 남는다. 차라리 2부에서 전국에 있는 치킨집을 돌아다니며 치킨과 지역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한국인의 밥상’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음식 프로그램이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도 충분히 재밌어할 만한 속도감을 갖췄다. 이쯤에서 치킨 브랜드 대표들에게 말하고 싶다. 치킨의 변신은 ‘무죄’. 가격 인상은 ‘유죄’.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