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에서 자란 암세포가 뇌까지…다양한 치료법 개발 '기대'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의 이해]
림프구계 혈액 세포가 암세포로 전환
발열·두통·멍 등 증상도 빨리 나타나
환자 10~15%는 뇌에 암 동반 발생
골수·혈액 암세포 없애도 재발 위험
성인은 조혈모세포이식이 근본 치료
생존율 향상 위한 임상 연구 진행 중
50대 여성 A 씨는 최근 자꾸 힘이 없고 어지러움을 느꼈다. 열이 나고 멍도 잘 들었다. 병원을 찾은 A 씨는 백혈구 수치가 높다는 말을 듣고 대학병원으로 전원돼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항암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 조혈모세포이식을 기다리고 있다.
백혈병은 과거에는 불치병으로 인식됐지만 신약 개발과 임상 연구가 쌓이면서 생존율과 완치율도 크게 높아졌다. 부산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신호진 교수(대한혈액학회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 연구회 위원장)의 도움말로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의 증상과 최신 치료법을 알아본다.
■백혈병 세포 혈액 타고 온몸 공격
백혈병은 우리 몸의 조혈기관인 골수에서 만들어진 정상 혈액 세포가 DNA의 돌연변이나 염색체 이상 등으로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암세포로 전환되면서 발생한다. 혈액 세포의 기원에 따라 림프모구와 골수성으로 나뉘고 진행 양상에 따라 급성과 만성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발표된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국내에서 새로 발생한 전체 림프모구 백혈병은 1068건으로, 그해 전체 암 발생 277만 523건 가운데 0.4%를 차지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60대(18.5%), 70대(15.6%) 다음으로 9세 이하(15.2%)가 많다. 인구 10만 명당 조발생률은 4세 이하가 5.0건으로, 전체 평균(2.1건)의 배를 넘어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다. 신호진 교수는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은 성인의 경우 소아보다 상대적으로 발생 빈도는 낮은 편이지만, 발생률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림프구의 분화나 증식과 관련된 특정 유전자 이상, 바이러스 감염, 방사선 조사, 유해한 일부 화학약품에 장기간 노출된 직업력, 항암제를 비롯해 세포 독성 약제를 투여받은 기왕력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백혈병 세포가 급증하면 정상적인 조혈 기능을 방해해 백혈구와 적혈구, 혈소판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에 따라 면역력 저하로 발열 등이, 빈혈로 피로감과 숨차는 증상이 나타난다. 혈소판 감소로 멍이나 코피 등 출혈이 있을 수 있다. 이 외에도 관절 통증이나 두통 등 증상이 있다.
신 교수는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은 골수에서 암세포가 빨리 자라기 때문에 증상 또한 급하게 나타난다"며 "발병하면 몸에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에 보통 1~2주 내에 비교적 빨리 병원을 찾는 편"이라고 말했다.
백혈병 세포는 골수에서 증식하고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간, 비장, 림프계, 대뇌, 소뇌, 척수 등 장기를 침범한다. 특히 백혈병 세포가 뇌척수액에 들어가 뇌에 암이 동반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 환자의 10~15%가 여기 해당한다.
■표적치료제 도입에 치료 성적 ↑
백혈병은 암세포가 혈액을 따라 퍼지는 전신 질환이기 때문에 외과적 수술로 치료할 수 없고, 항암제를 투여하는 항암화학요법이 표준 치료 방법이다. 일차적으로 골수와 혈액 내에 존재하는 백혈병 세포를 없애고, 골수와 혈액이 정상 기능을 되찾은 뒤에도 몸속에는 암세포가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재발을 막고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치료를 이어 가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 항암치료로 좋아지지만 재발을 잘한다는 점이다. 신 교수는 "소아는 항암치료만으로도 완치율이 높지만 성인은 재발 위험 때문에 5년 생존율이 40%에 그친다"며 "성인의 경우 조혈모세포이식이 궁극적으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치료법"이라고 강조한다. 조혈모세포이식은 백혈병 환자의 조혈모세포를 제거하고 대신 정상인의 조혈모세포를 주입하는 치료법이다.
최근에는 예후가 불량한 유전자 이상을 갖고 있는 환자에 대해 특정 유전자를 공격하는 표적치료제가 도입되면서 치료 성적이 크게 향상됐다.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양성인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의 경우 성인 환자의 40~45%를 차지하면서도 전통적으로 치료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 항암제와 최신 3세대 표적치료제를 병행하고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했을 때 5년 생존율이 73%까지 높아졌다.
다양한 면역 세포를 이용한 치료법도 개발돼 상용화 단계다. 환자의 면역 세포(T 세포)를 변화시켜 암 세포 표면의 특정 단백질을 공격하는 카티(CAR-T) 세포치료제는 반복적으로 재발하거나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불응성 환자에게도 완치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부산대병원 신호진 교수는 "대한혈액학회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 연구회는 필라델피아 염색체 양성 백혈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을 준비,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노력을 통해 국내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 환자들의 치료 성적이 더욱 향상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