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선거 결과 ‘우향우’… 마크롱 전격 의회 해산
중도 우파 1위 안정적 사수에
극우·포퓰리즘 약진 더해져
이민 정책 의제 최우선될 전망
우크라 공동 지원 불투명 관측
프랑스 마크롱, 조기 총선 카드
극우 정당 상승 봉쇄 ‘정면돌파’
지난 6일(현지시간)부터 9일까지 실시된 유럽의회(EU) 선거 결과 중도 우파가 1위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수한 가운데 극우 정당이 약진하며 유럽 정치 지형의 ‘우향우’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극우 정당 의석수 대폭 증가
10일(현지시간) 유럽의회가 발표한 각국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등 인구 규모가 큰 주요국에서 극우와 포퓰리즘 계열 정당이 의석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미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720석을 거느린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현재 다수당인 중도 우파 유럽국민당(EPP)이 약 184석을 얻어 1위 자리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속한 강경 우파 정치그룹 유럽보수와개혁(ECR), 유럽의회 내 극우 정치그룹(교섭단체)인 정체성과 민주주의(ID)가 각각 약 80석, 약 53석을 확보해 세력을 크게 불린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유럽의회 제2당이자 EPP의 기존 협력 파트너인 중도 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는 139석에 그쳐 고전했고, 진보적인 환경 정책을 강조하는 녹색당의 의석수도 50석대 초반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 CNBC 방송은 극우와 포퓰리즘 세력의 입김이 커지면서 향후 유럽의회의 ‘우향우’가 일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뜨거운 감자’인 이민 문제에서부터 환경,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방 정책은 물론 산업과 EU 몸집 확대 등에 이르기까지 EU 주요 정책 전반에 극우 진영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이야기다.
특히 국경 통제 강화 등을 추구하는 우파가 득세함으로써 차기 유럽의회가 활동하게 될 향후 5년 동안에도 이 문제가 최우선 의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친러시아, 친중 성향인 극우·포퓰리즘 정당의 득세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 차원의 공동 지원 기조가 불투명해지고, EU 공동 방위비 부담 확대에 대한 이견이 분출될 소지도 있다고 CNBC는 예상했다.
이 밖에 EU에 회의적인 극우 세력의 급부상으로 EU의 확장 정책에는 제동이 걸리면서 차기 유럽의회가 이끌어갈 2029년까지 EU 회원국은 현재와 같이 27개국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도 나온다.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번에 약진한 ECR과 ID가 대 러시아 입장 등 여러 분야에서 이견을 보이는 만큼 유럽의회에서 연합 세력을 결성해 협력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면서도, 이들 극우 세력들이 이민 정책부터 기후 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제에 있어 EU의 전반적인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마크롱, 조기 총선 승부수
이처럼 극우 정당의 압승 예고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오는 30일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유럽의회 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대국민 연설에서 “나는 투표를 통해 여러분에게 우리 의회의 미래에 대한 선택권을 돌려드리기로 결정했다”며 “오늘 저녁 국회를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달 30일 1차 투표, 내달 7일 2차 투표를 알리는 법령에 곧 서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2022년 6월 총선을 치른 지 2년 만에 다시 의회를 구성하게 생겼다.
마크롱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의회를 해산하기로 한 건 이날 치러진 프랑스 유럽의회 선거 출구조사 결과 소속 정당인 중도 성향 르네상스당이 극우 국민연합(RN)에 완패할 것으로 예상된 데 따른 것이다.
유럽의회가 발표한 1차 국가별 선거 예측 결과에 따르면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RN이 약 32%의 득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출구조사 결과대로라면 RN은 유럽의회 선거 역사상 프랑스 단일 정당으로는 처음으로 30% 이상 득표율을 기록하게 된다고 유로뉴스는 짚었다. ID에 속해 있는 RN의 예상 득표율은 2019년 유럽의회 선거 때보다 10%포인트가량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2위로 예측된 르네상스당의 예상 득표율은 15.2%에 그쳤다. 르네상스당은 유럽의회 중도 성향 자유당그룹(Renew Europe)의 일원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선거 결과에 대해 “지난 몇 년 동안 유럽의 진보에 반대해 온 극우 정당들이 대륙 전역에서 진전을 보인다”고 유감을 표한 뒤 “국수주의자와 선동가의 부상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그리고 유럽과 세계 내 프랑스의 입지에 대한 위험”이라고 우려했다.
프랑스에서 의회 해산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임을 확인하고자 할 때 행사할 수 있다. 또 의회와 정부 간 심각한 정치적 교착 상태에 빠져 더는 정부 정책을 추진할 수 없을 때나 대통령이 특정한 정치적 변화나 개혁을 밀어붙이고 싶을 때 행사할 수 있다.
프랑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마지막으로 의회를 해산한 대통령은 1997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다. 그에 앞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과 샤를 드골 대통령이 각각 두 차례 의회 해산권을 행사했다.
이번 조기 총선에선 임기 5년의 하원 의원 577명을 선출하게 된다. 첫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없으면 1위와 등록 유권자의 12.5%가 넘는 표를 확보한 2∼4위가 다시 맞붙는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