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술 취해 기사 때리고 택시 빼앗아 운행… 30대 징역형
부산역 인근 주점서 음주 뒤
70대 기사 2명 잇따라 폭행
자동차 탈취 게임처럼 범행
법원, 징역 1년 6개월 선고
부산 도심 한복판에서 만취 상태로 택시 기사를 폭행하고 택시를 2대나 탈취해 도주하는 난동을 부린 남성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용자가 캐릭터를 조작해 자동차를 훔치는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유명 게임인 ‘GTA(Grand Theft Auto)’가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부산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장기석)는 지난 5일 상해, 자동차 불법 사용, 절도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한국인 30대 남성 A 씨는 국내에 거주하는 모친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고 지난해 8월 19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당시 KTX를 타고 어머니가 있는 울산으로 가려고 했지만, 열차에서 잠이 드는 탓에 울산역을 지나쳐 늦은 저녁 부산역에서 내렸다. 어쩔 수 없이 부산에서 숙소를 잡은 A 씨는 인근 텍사스 거리에 있는 주점을 방문해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셨다.
하루 뒤인 8월 20일 오전 5시께 술집에서 나온 A 씨는 동구의 한 차도에 정차한 택시를 타려고 했다. 택시 기사인 70대 B 씨는 “심야 시간이라 운행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격분한 A 씨는 운전석으로 다가가 창문을 두드리며 재차 택시를 운행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B 씨가 택시에서 내리자, 주먹으로 B 씨의 얼굴을 여러 차례 폭행했다. B 씨는 안면 일부가 골절되고 시력이 약화하는 등 크게 다쳤다. 이후 운전석에 탄 A 씨는 직접 택시를 몰았다. 하지만 조수석에 탄 B 씨가 결국 차 키를 뽑는 데 성공해 겨우 363m만 이동하는 데 그쳤다.
A 씨의 기행은 첫 택시에서 내린 후에도 계속됐다. 때마침 운행 중이던 또 다른 택시를 발견하고 앞을 가로막았다. A 씨는 택시가 멈추자, 운전석에 접근해 택시 기사 70대 C 씨의 몸을 잡아당겨 택시에서 내리게 하고 주먹으로 머리를 때려 기절시켰다. C 씨는 뇌출혈로 인한 후유증으로 8주의 병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다. A 씨가 운전하는 택시는 614m를 달려 인근 창고 담벼락을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A 씨는 여전히 멈출 줄 몰랐고, 부산진역 철도 물류센터에 있던 자전거를 훔쳐 타기도 했다. 경찰이 3시간가량 부산역 물양장 인근에 숨어 있던 A 씨를 붙잡으면서 범행은 끝났다.
부산 도심에서 벌어진 A 씨의 택시 탈취 사건은 유명 게임 GTA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아찔했다. 미국 비디오게임 GTA 시리즈는 이용자가 게임 내 캐릭터를 조작해 자동차를 훔치거나 도시에서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게임이다.
A 씨는 법정에서 “과거 미국 우범지대에서 강도를 당한 경험이 있는데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그 지역과 똑같이 보여서 무조건 탈출해야겠다는 공포감이 들었다”며 “시비가 붙었던 외국인들이 혹시나 쫓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상황에서 택시를 타고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A 씨가 술에 만취해 외국인 폭력배에게 쫓기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범행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피고인 스스로 이와 같은 만취 상태를 자초했다"며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들에게 중한 상해를 입히고 택시를 불법 사용해 공중에 상당한 위험을 발생시킨 점은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70대 고령의 택시 기사 2명은 택시 운행에 지장이 초래될 정도로 건강 상태가 악화해 상당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한 피해자를 위해 수천만 원을 형사 공탁했지만,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을 의사를 밝혀 유리한 양형 요소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