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 혁신 이뤄져야 의료개혁은 물론 지역의료도 산다”
[의료산업협의회 정기총회]
11일 부산롯데호텔서 회의 개최
‘의료 대란 후 병원 경영’ 토론회
박개성 엘리오앤컴퍼니 대표 발제
“의대 증원 해도 의사 부족 지속
향후 30년 동안 구인 경쟁 심화
지역의료 품질에 냉철한 평가
의료 수가 상세한 대안 세워야”
“‘지방이라서 안 된다, 대학병원이 아니라서 안 된다’는 말로는 안 됩니다. 지난해 일본의 상위 10개 병원 중 5곳이 수도권이 아니거나 대학병원이 아닌 병원입니다.”
지난 11일 부산 부산진구 부산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 동아대병원, 인제대 해운대백병원, 양산부산대병원,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부산시병원회를 비롯해 지역의료를 이끄는 의료기관의 수장들이 일제히 엘리오앤컴퍼니 박개성 대표의 발제에 눈과 귀를 집중했다.
(사)부산권의료산업협회의는 이날 정기총회에서 ‘지역의료 개혁과 의료 대란 후의 병원 경영’을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마련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 대란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의료의 전망과 발전 방안을 두고 분석과 토론이 오갔다.
■의사 수급난은 가속화될 것
“대학병원은 경영난을 호소하고 종합병원은 반사 이익으로 일부 환자가 늘었습니다.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고 의대생들은 유급을 불사한다고 합니다. 대한의사협회는 18일 전면 휴진을 예고했습니다. 각자 처한 현실을 짚어보고 미래를 예상하면서 지혜를 모아봅시다.”
부산권의료산업협의회(이하 의산협) 공동이사장인 구정회 의료법인 은성의료재단 이사장이 토론회의 좌장을 맡아 현재 의료계의 혼란을 요약하고 보건의료 컨설팅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박개성 대표를 소개했다.
박 대표는 지방, 특히 대학병원일수록 의사 수급난은 이미 ‘현실’이라는 진단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의사의 보상 수준은 높아져서 개원가 의사 연봉이 평균 4억 원대 정도인데, ‘오지’가 아니라 어엿한 지방 도시들의 병원은 의사나 교원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특히 호봉제로 운영되는 대학병원은 중소병원 의사와 비교하면 교수의 평균 급여가 72% 수준이고, 조교수는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이렇다 보니 요즘은 서울 ‘빅4’ 대학병원에서조차도 조교수로 남을 바엔 학교를 떠날 정도입니다.”
그는 대학병원과 중소병원의 의사 수급난이 의료 사태 이후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단 공급 측면에서는 ‘문재인 케어’로 대표되는 보장성 강화 정책과 실손 보험의 영향으로 개원의가 급증했다. 또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 문화의 확산으로 근무시간 기준으로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해졌다. 수요 측면에서는 인구 고령화라는 막강한 변수가 있다.
이에 더해 박 대표는 의대 정원 증원과 관계 없이 당분간 의사 수는 실질적인 증가 효과가 없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현재 연령대별 의사 분포를 보면 2035년에 약 3만 명이 70대 이상이 됩니다. 그 뒤에도 10년 단위로 각각 3만 명 안팎이 70대로 진입합니다. 향후 30년 동안은 실질적인 의사 증가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의사 구인 경쟁이 심화되고 의료진의 이동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수가 혁신과 정확한 정보 제공을
그렇다면 지역의료의 살 길은 무엇일까. 박 대표는 “부산의 대학병원 실력과 서울의 ‘빅4’ 대학병원 실력이 정말로 다르냐”는 질문에 답이 있다고 강조했다. “좋은 대학과 좋은 의사의 상관 관계는 높지 않고, 질환별로 수도권 대학병원이 부산 대학병원보다 낫다고 주장할 근거는 거의 없습니다. 의료는 양이 질을 선도하는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지역의료의 품질과 의료 성과에 대해 냉철한 평가와 인식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는 정부와 지자체, 언론 등이 나서서 국민들에게 지역 병원과 의료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가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면서 “지방 국립대병원을 수도권 대형병원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밝힌 건 어불성설이라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화순전남대병원은 5대 호발암 수술 건수 순위에서 전국 6위권을 지키고 있지만 정작 지역 주민들은 수도권 원정 진료를 계속한다.
외국에도 선도 사례들이 있다. 일본 가메다병원은 반경 20km의 80% 이상이 산림과 농경지지만, 첨단 장비와 전방위 의료 시스템으로 지난해 뉴스위크 선정 세계 병원 순위에서 일본 3위, 세계 47위에 선정됐다. 미국 US뉴스 선정 병원 평가에서 7년 연속 1위에 오른 미국 메이오클리닉 또한 도시 인구 12만 명의 절반 이상이 이 병원과 연관 산업에 종사하면서 인구를 불러 모으고 지역사회를 살리는 병원으로 꼽힌다.
수가의 혁신은 의료개혁은 물론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도 핵심 선결 과제다. “필수의료의 수가를 올리거나 의료전달체계에 따라 수가에 차이를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의료에 대해서도 인구 대비 의사 수와 병원 수를 기준으로 부족한 지역에 더 올려주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의료계가 의료사태 국면에서 수가 혁신에 대해 좀 더 상세한 대안을 가지고 정교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발상의 전환으로 미래 대비해야
병원들도 의료 대란 다음을 준비해야 할 때다. 박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때 오히려 시설이나 인사 제도, 서비스를 개선한 병원들처럼 진료과 포트폴리오와 성과급을 정비하고 구매 전략을 다시 짜는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의 미래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발제 후에는 지역의료 현장의 경영자인 의산협 이사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김성수 해운대백병원장은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병원 구성원의 인식부터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다. 안희배 동아대병원장 또한 “제한된 재원과 호봉제의 한계 속에서 대학병원과 중소병원 의사들의 자부심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임금 외에 무엇을 제시할 수 있을까”를 궁금해 했다.
정부발 의료개혁의 향방에 대한 우려와 주문도 나왔다. 이상돈 양산부산대병원장은 “이번 의료 사태가 끝난다고 해도 전공의가 병원으로 돌아올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있다”고 말했다. 이창훈 동남권원자력의학원장은 “우리 의학원의 경우 의료 대란 후 병상가동률이 90%대까지 올랐지만 공공병원의 특성상 수익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면서 수가 개편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정회 이사장은 “47년 전 만든 의료보험 제도를 끌고 오면서 지금 여러 문제가 중첩된 상황”이라며 “지역의료를 이끌고 있는 병원 경영자들도 의산협을 중심으로 여러 말씀을 귀담아 들어서 우리나라 의료의 격동기를 현명하게 넘고 활발한 미래를 맞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산협 대표이사장인 김진수 부산일보사 사장은 “의료계가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이지만 지역의료 발전을 화두로 출발한 부산권의료사업협의회가 오늘 정책 토론회를 통해 지역의료의 발전 방안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서 뜻깊은 자리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정기총회에서는 박종호 부산시병원회장(의료법인 센텀의료재단 이사장)이 김철 전 부산시병원회장(부산고려병원 이사장)의 뒤를 이어 의산협 공동이사장으로 선임됐다. 김철 이사장은 의산협 고문으로 남는다. 이밖에 최종순 고신대복음병원장, 윤현민 동의대한방병원장, 이창훈 동남권원자력의학원장, 서영호 부울경의약품유통협회장, 홍성준 부산롯데호텔 사장, 송복철 부산경제진흥원장, 이형철 SMS의료관광협의회 이사장이 새롭게 이사로 합류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