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 빠듯한 대학생, ‘돈 안되는’ 연극에 빠지다
76주년 맞이한 ‘부대 극회’
무대 완성하는 쾌감 매력
시민 관심과 응원 필요해
눈코 뜰 새 없이 흘러가는 대학 생활과 각종 취업 준비로 바쁜 시기, 전공과는 전혀 관련 없는 ‘연극’에 빠진 학생들이 있다. 그들은 직접 기획한 연극 무대를 관객에게 선보이는 성취감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1948년 만들어져 올해로 창립 76주년을 맞은 부산대 극예술연구회(이하 극회). 높아진 취업 문턱 등으로 대학 동아리 문화가 과거보다 사그라진 요즘에도 극회는 아직 팔팔한 ‘현역’ 동아리다. 매년 ‘봄 워크샵’을 시작으로 계절마다 1편 이상의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린다. 동아리 홍보를 위한 짧은 공연을 포함하면 1년 내내 공연과 공연 준비의 연속이지만, 극회에 소속된 재학생 90여 명은 즐겁게 작품 활동을 벌인다.
극회는 최근에도 부산대 ‘10·16 기념관’에서 연극 ‘웃으며 안녕’을 선보였다. <부산일보> 신춘문예 출신 이난영 작가의 희곡인 ‘웃으며 안녕’은 해밀상조회사에서 근무하는 4명의 상장례지도사들이 장례를 치르며 각자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이야기다. 각색부터 무대 제작, 출연, 홍보에 이르기까지 공연의 전 과정을 학생들이 도맡았다. 그들의 무대는 작품 속 배경인 장례식장, 영안실 등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연기는 약간 어색해 귀여운 구석이 있으면서도, 슬픈 장면에서 관객의 눈물을 쏙 빼기 충분했다.
각종 아르바이트에 자격증·어학성적 취득 등 이른바 ‘스펙 쌓기’에도 벅찬 학생들이, 이렇듯 연극에 ‘진심’인 이유가 궁금했다. 극회 소속 학생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극회의 매력으로 꼽았다. 공연 준비가 때론 벅차지만 무대를 완성하고 나면 찾아오는 뿌듯함이 매우 크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올해로 2년째 활동 중인 이정은(19) 씨는 “한창 공연을 준비할 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습하고 방학, 주말도 없이 학교에 나온다. 얼마 전에도 공연 준비 때문에 두 달간 본가에 못 가 아빠가 걱정하기도 했다”며 “직접 만든 무대를 보고 있으면 자부심이 생기고 공연이 끝나면 힘들었던 점은 다 미화돼 또 다른 공연에 참여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친구가 관람을 오거나 학교 커뮤니티에 재밌다는 반응이 올라오면 제일 큰 보상”이라고 뿌듯해했다.
7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극회는 배우, 조명감독, 무대감독 등을 다수 배출한 동아리다. 유재명 배우, 이재용 배우를 포함해 유튜브 채널 ‘띱’에서 활약 중인 윤혁준 배우 등이 극회를 거쳤다. 최근까지도 공연마다 지원금을 보내주거나 사비를 들여 서울 연극 공연에 초대할 정도로 선후배 간 끈끈한 관계를 자랑한다.
이 씨는 “앞으로 살면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경험을 얼마나 해볼까 싶고, 졸업 후에는 더 기회가 없을 거로 생각한다”며 “대학에서 다들 학점 걱정만 하고 있고 공부만 하는 게 너무 안타깝다. 이런 소중한 경험을 다른 친구들한테도 꼭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나 지역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관심’을 언급했다. 부산에서 활동 중인 대학 연극 동아리 연합이 함께 만드는 공연을 구상 중인 만큼, 시민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바람이다.
그는 “공연을 알리기 위해 포스터, 인스타그램으로 홍보하거나 교수님한테 메일을 보내지만 공연이 열린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며 “시민들도 공연을 봐주시고 하면 단순히 추억 쌓기 수준에서 벗어나 부산 문화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데 좋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