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비자금으로 엮인 세기의 이혼 재산 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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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노태우 비자금’ 유입 기업 이미지 타격
300억 원 종잣돈 재산 귀속 여부 논란
SK 최태원·노소영 항소심 이슈 쏟아져

재벌가 이혼은 조정·합의로 마무리 관행
막대한 양도소득세 등 경영권 리스크 커
추징 금액 기부 통해 국민 공감 얻어야

이혼 재산 분할 소송을 진행하면, 그동안의 금융거래 내역 흔적을 상대방에게 그야말로 탈탈 털리게 된다. 상대방의 재산을 찾기 위해 부동산, 보험, 주식뿐만 아니라, 전체 계좌에 대하여 조회신청을 하게 되고, 돈을 어디에 얼마를 숨겨놨는지, 그 돈으로 뭘 했는지 낱낱이 드러나게 된다. 배우자 몰래 그동안 쌈짓돈으로 숨겨놓았던 비자금이 들통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경우도 많은데, 끝내는 마당에 배우자에게 들키는 게 두려운 것은 그 비자금이 재산 분할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 규모, 세기의 이혼이라 불리는 SK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항소심 재판에서 1심보다 2배가 넘는 재산 분할 액수가 인정된 이후, 여러모로 이슈가 되고 있다. 1심보다 크게 늘어난 액수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메모가 불쏘시개가 되었다는 점은 적잖이 충격을 주고 있다. 최 회장이 일부일처제를 존중하지 않았다고 꾸짖은 재판부에 대해 속 시원하다며 당연한 결과라는 여론도 있지만, 막대한 재산 분할 규모에 ‘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이 SK에 유입이 된 것이 사실인지, 그렇다면 불법 비자금을 종잣돈으로 삼아 증식된 재산을 노 관장에게 귀속시키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SK그룹이 현재 대기업이고, 그 회사의 전신에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 들어가고, 그 비자금의 규모가 그 시절에 무려 300억 원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 여느 이혼 소송과 같이 생각해 보면 간단한 문제다. 일반 당사자들 간의 이혼 소송에서 배우자의 일방이 혼인 중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자금이 비록 출처를 알 수 없는 비자금이라 하더라도, 재산형성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라면 재산 분할 대상이 되고, 기여도가 인정된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재산 분할에 있어서는 도덕적인 문제, 기업의 미래 문제를 떠나 이혼 변론 종결 시에 부부의 재산을 어떻게 상호 간에 나누느냐가 쟁점이고, 그 기본 법리는 그 돈이 비자금이라고 해서, 또 액수가 크다고 해서 달라질 문제는 아니다. 통상적으로 이혼 소송에서 재산을 취득하는 데 불법성이 있었는지는 논외의 대상인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 온 300억 원 어치 약속어음과 메모가 30년 만에 항소심 소송에서 비장의 카드로 드러난 것은, 최 회장이 SK 주식에 대해 특유재산을 주장하였고 1심은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재산 분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소심은 SK그룹 성장에 노 전 대통령과 노 관장의 기여도를 인정하고, SK 주식을 재산 분할 대상으로 삼았다. 최 회장이 대통령의 사위였다는 사실, 그 시절 알게 모르게 특혜를 입었을 거라는 것은 누구나 으레 짐작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세기의 이혼이라는 재산 분할 소송에 30년 전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메모까지 드러나고, 세계적 기업 성장의 발판에 대통령의 비자금이 유입되었다는 항소심 판단이 나오면서, SK그룹은 기업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그동안 재벌가들이 이혼을 하면서도 소송이 아닌 조정과 합의로 마무리를 하였던 것은, 양측이 서로 말이 잘 통해서가 아니었다. 이혼으로 인한 기업 오너 리스크를 줄이고 회사의 경영과 지분 구조에 대한 합리적인 고려를 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2019년 배우자인 매켄지 스콧과 이혼하면서 아마존의 지분 4% 상당을 재산 분할로 지급했는데 그 가액은 무려 52조 원 정도로 막대한 금액이었지만, 경영권에는 문제가 없도록 조치했다.

법원은 그간 대기업 경영인의 이혼 재산 분할 소송에서 주식을 포함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관행적으로 차별을 두고 있었기에 최 회장 측은 이 부분에서 안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에서 회사 인수 자금으로 비자금 메모까지 등장했음에도, 최 회장 측은 만에 하나 재산 분할 대상으로 인정될 경우의 경영권 리스크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비 없이 재산 분할의 금전 지급을 바란다는 의사만 표했다. 이대로 판결이 확정될 경우 최 회장은 결국 1조 원이 넘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부동산이나 주식을 타인에 매도하여 현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데, 그 경우 수천억 원의 양도소득세까지 발생하고 판결에 따른 금전 지급에 대해 연 5%의 지연 이자까지 발생한다는 점에서 경영권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그런데 3남매를 둔 노 관장 측도 SK그룹 지배 구조 약화를 바라지는 않는 분위기이고, 결국은 상호 간의 협의점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정말 노 관장의 주장처럼 노 전 대통령의 300억 원의 비자금이 전달되어, 그 돈이 SK 기업 성장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라면, 노 관장이 최 회장으로부터 재산 분할받는 금액 중 추징의 대상이 되었을 그 비자금의 해당 금액은 기부를 선언하는 식으로라도 최소한으로 사회적 책임을 지고, 국민의 마음에 공감을 얻는 게 어떨까 혼자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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