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원 아동학대 알고도 당시 경찰은 사건 덮었다”
생존자협, 기록원 자료 확보
해운대경찰 1989년 내사 종결
옷 벗겨 구타하고 강제 노동도
진화위, 가해자 포함 진상 조사
과거 부산 아동보육시설 ‘덕성원’에서 학대·폭행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경찰이 알았지만, 사건을 내사 종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는 신청·미신청 피해자 46명과 조사 대상자 5명을 상대로 진상 조사에 나섰다.
10일 덕성원피해생존자협의회가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1989년 당시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덕성원에서 일어난 아동학대를 알면서도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내사 종결 보고서에는 원장 A 씨가 보육원생들을 수시로 폭행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덕성원 사건은 부산 해운대구에 있었던 부랑아동 수용시설 덕성원에서 생활한 원생들이 열악한 의식주 등 생활 여건을 견디며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진화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사건이다. 구체적인 인권침해 내용은 △강제 노역 △구타·가혹행위 △성폭력 △종교의 자유와 교육받을 권리 침해 등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1963년부터 1983년까지 덕성원에서 자란 진정인은 덕성원 원장 A 씨가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폭행하거나 “봉고 차량에 태워 묶은 후 형제원에 보내겠다”는 등의 말로 위협했다며 경찰에 진정을 접수했다. 진정인은 덕성원에서 옷을 벗겨 구타하고 단체 기합을 주기도 했으며, 원생 손바닥 50대를 때리는 등 아동 학대라 볼 수 있는 행위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진정인이 A 씨로부터 매를 맞고 기합 등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아동 폭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교육상 필요할 때 매를 때린 사안’이라고 봤다. 범죄행위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경찰은 당시 사건을 내사 종결 처리했다.
최근 발견된 1997년 당시 덕성원 원생의 일기장에는 나이가 어린 원생들까지 밭일과 같은 힘든 노동에 동원됐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당시 6학년이었던 원생은 고된 작업을 했다고 일기에 적었다. ‘깻잎 따기’라는 1997년 9월 7일 일기엔 ‘처음 500장씩 딴 다음 다시 100장을 더 땄다’고 기록해 놨다.
이처럼 어린 원생들을 상대로 한 학대와 강제 노동 정황이 있음에도 덕성원의 정확한 피해자 수와 신원을 명확히 파악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부산시가 가지고 있는 덕성원 수용자 대장엔 1956년부터 1967년까지 덕성원에 입소한 원생 174명이 기록돼 있다. 다만 이후 덕성원에 입소한 이들에 대해선 공식적인 기록이 없다.
덕성원피해생존자협의회 안종환 대표는 “덕성원 피해자는 약 500여 명인데, 명확한 근거 자료가 없어 이들이 조사도 제대로 받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며 “덕성원에서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공포의 소굴’이라 불리던 나무창고에 데려가 폭행하는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벌어졌던 만큼 지금이라도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게 조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진화위는 덕성원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벌이고 있다. 현재 진실규명 신청인 1명과 미신청 피해자 45명을 대상으로 진술조사를 완료했다. 조사 대상자 5명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인데, 덕성원 사건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로 추정된다. 진화위 관계자는 “미신청 피해자에 대한 구제 방안을 마련하고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오는 10월 조사를 마무리하고 결과를 보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