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日 새 총리, 한일 관계 긍정 영향 기대
2008년부터 '4전 5기' 끝에 당선
한일 과거사 문제 상대적 온건파
역사수정주의 경향 아베에 비판적
강제징용 배상 등 전향적 기대감
극적 정책 변경 힘들 거란 전망도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28대 총재로 선출되면서 차기 일본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다섯 차례 도전 끝에 당권과 총리직을 거머쥐게 된 그는 한일 역사 문제에서 비교적 온건한 목소리를 내 온 비둘기파로 양국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일본 집권 자민당은 지난 27일 도쿄 당 본부에서 개최한 총재 선거를 통해 이시바 전 간사장을 28대 총재로 선출했다. 그는 후보자 9명이 난립한 이번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154표를 얻어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181표)에 27표 차로 뒤졌으나, 결선 투표에서 극적인 역전에 성공했다. 결선 투표에서 215표를 얻어 194표에 그친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을 21표 차로 눌렀다.
이시바 총재는 2008년부터 이번 선거까지 다섯 차례 총재 선거에 도전한 끝에 드디어 당 총재와 총리에 오르게 됐다. 이시바 총재는 내달 1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차기 총리로 선출된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다수당인 집권당 당수가 총리를 맡는다.
이시바 총재는 자민당 내 ‘비주류’ 인사로 역사수정주의 경향을 상징하는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책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왔다. 특히 이시바 총재는 한일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해 유력 정치인 중에서는 드물게 일본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입장을 밝혀 왔다. 2019년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블로그에 “우리나라가 패전 후, 전쟁 책임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은 것이 많은 문제의 근저에 있으며 그것이 오늘날 여러 가지 모양으로 표면화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썼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참배하지 않았다.
이에 이시바 내각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구축한 한일 관계 개선 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추진되는 각종 협력 사업도 탄력받을 것으로 관측한다.
특히 과거사 문제에 있어 한층 전향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가을 개최가 예상되는 일제강점기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광산 노동자 추도식의 규모와 일본 정부 측 참석 인사 지위 등에 있어 일본이 한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 보인다.
일본이 성의를 보이지 않았던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방침이 달라질지 주목된다. 한국이 작년 3월 강제징용 배상 판결 해법으로 ‘제3자 변제’ 방식을 발표하면서 한일 관계는 외형적으로 회복됐지만, 제3자 변제를 이행하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일본 기업이 전혀 참여하지 않는 등 여전히 소극적이다. 그러나 최근 크게 보수화한 일본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정책 방향이 극적으로 바뀌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가 당내 지지기반이 약한 비주류라는 점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다만 그는 방위상을 지냈고 군사 분야에 관심이 많아 방위력 강화와 개헌은 기시다 총리 이상으로 강력하게 추진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시바 총재는 지난 27일자로 미국 보수 성향 싱크 탱크 허드슨연구소에 게재된 ‘일본 외교정책의 장래’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아시아에 나토와 같은 집단적 자위 체제가 존재하지 않고 상위 방호의 의무가 없어 전쟁이 발발하기 쉬운 상태”라고 진단하며 아시아판 나토 창설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아시아판 나토 창설로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핵 연합에 대한 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일본과 미국의 핵 공유와 일본 내 핵 반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시바 내각 윤곽이 29일 드러났다. 당 부총재에 총재 선거 때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아소 다로 전 총리 대신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를 기용할 방침이다. 스가 전 총리는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와 함께 총재 선거 결선 투표에서 이시바 총재를 밀면서 ‘킹 메이커’ 역할을 했다. 또한 함께 경쟁했던 인사들도 요직에 임명할 예정이다. ‘40대 기수론’으로 주목받은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은 이르면 다음 달 열릴 것으로 보이는 총선을 대비해 선거대책위원장에 임명하며 다른 출마자였던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유임한다는 방침이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