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가을 불청객, 벼멸구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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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녘에 농민들의 한숨과 시름이 한가득이다. 폭염, 폭우 피해에 이어 이번에는 병충해 탓이다. 그중에서도 벼멸구의 습격이 올해 유독 심각하다. 처참하게 쓰러진 볏대들, 군데군데 패인 들판이 마치 폭탄 맞은 듯 쑥대밭이다.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면 벼멸구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농민들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고 아우성이다.

벼멸구는 주로 논에서 벼를 먹고산다. 줄기 하단에 서식하면서 수액을 빨아먹어 벼의 성장을 방해한다. 분비물은 식물 표면에 그을음병도 유발한다. 벼 수확량이 줄고 쌀의 품질까지 떨어지는 이유다. 심하면 벼 전체가 말라 죽는 피해를 입는다. 멀리서 보면 들판이 허옇게 또는 붉게 죽음의 색깔로 얼룩져 있다. 방제도 소용없다는 게 현장의 푸념이다. 벼멸구 밀도가 높고 내성도 쌓여왔단 뜻이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어째서 10월까지 벼멸구가 기승을 부리나. 여름철 폭염이 길어진 까닭이다. 벼멸구는 고온다습한 환경을 좋아한다. 이상기후가 번식력을 높이는 것이다. 벼멸구 발생의 주요 배경은 결국 기후 온난화다. 따뜻한 겨울, 이른 봄은 월동을 용이하게 하고 개체 수도 급증시킨다. 우리나라 벼멸구는 중국 남부나 동남아에서 바람을 타고 들어온다.

최근 기온이 떨어지면서 벼멸구 증식은 멈췄다. 하지만 피해 면적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벼멸구 피해 농지는 전국 3만 4140ha(1ha는 1만㎡), 여의도 면적 117배다. 경남(4190ha)은 전남·전북에 이어 세 번째로 피해가 크다. 지금도 충남, 충북, 경북, 울산, 경기 등지로 전국 확산 양상이다. 얼마 전에는 도심 주택가까지 벼멸구가 출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상기후의 여파는 실로 전방위적이다.

땀 흘려 일군 한 해 농사가 큰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 그것이 가장 안타깝다. 모내기하고 피 뽑고 김매고 거름 주고, 거기 들인 지극한 정성은 측정조차 할 수 없고 돈으로 환산하기도 힘들다. 그러니 수확기를 앞둔 농가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폭우 피해가 채 복구되지 않은 곳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마저도 다른 뉴스에 가려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농사의 소중함은 사라졌고, 정부의 농정은 농촌 현실을 무시한 지 오래다. 가을 폭염과 병충해는 매년 악화할 것이다. 끝내 농업을 포기해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이렇게 내버려두어도 괜찮은 것인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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