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천대받는 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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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벼 재배 면적은 69만 7714ha. 관련 통계가 공표된 1965년 이후 최저치다. 2004년엔 111만 4950ha였다. 20년 만에 3분의 1 이상 줄어든 것이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인가, 정부는 벼 재배 감소 추세를 가속화한다. 2030년까지 국가 관리 간척지에서 벼농사를 완전히 없애겠다는 내용의 ‘간척지 이용 종합계획’을 최근 고시했다. 명분은 쌀 공급 과잉이다. 공급 과잉은 소비 부족에 따른 것. 올해 국내 1인당 평균 쌀 소비량은 53.3kg으로 추산됐다. 이 또한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62년 이후 최저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벼 재배 면적을 무작정 줄이는 게 옳은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일이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

‘쌀 파동’이다. 햅쌀 가격이 작년에 비해 2배 이상 폭등했다. 슈퍼마켓에선 ‘가족당 1포대’ 식으로 판매를 제한한다. 포장된 즉석밥도 품귀 현상을 보인다. 당황한 일본 정부는 해외 관광객이 몰린 탓이라는 성급한 해명을 내놓았지만, 안일한 대응이라는 질타만 받았다. 관광객이 먹어 치우는 양이라고 해봐야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준이고, 그보다는 일본 국민의 쌀 소비량이 최근 급증했다는 통계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빵 같은 제반 물가 상승, 대지진 경고에 따른 사재기, 폭염·폭우 등 이상기후로 인한 쌀 생산량 급감 등이 거론된다.

역시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다. 우리라고 일본처럼 난데없는 ‘쌀 파동’을 겪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만약 쌀이 극도로 귀해지면 어쩔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쌀을 밟으면 발이 비뚤어진다”고 할 만치 쌀은 우리 민족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옛날에만 그랬던 게 아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쌀을 제외하면 한국인이 먹는 식량 중에서 자급이 가능한 것은 거의 없다. 근래 쌀보다 많이 먹는다는 고기도 자급률은 60%에 그친다. 밀이나 콩 따위는 말할 것도 없다. 이들 식량의 수입에 차질이 생기면 마지막으로 의지할 데라곤 쌀밖에 없다. 당장 소비가 줄었으니 쌀은 필요 없다? 안 될 말이다.

자고로 국민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쌀이 너무 천대받고 있다. 특히 정부가 정책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국민이 쌀을 먹지 않는데 어쩌냐고? 그래서 국정이 어려운 게다.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라고 국민이 큰 권한을 쥐어 주지 않았나. 의지와 능력이 없으면 권한은 내려놓아야 한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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