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레시피 라디오 다큐멘터리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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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흰지팡이의 날 공개
4명의 시각장애인 사연·음식 소개

부산영어방송 ‘손끝요리사-인생을 요리하다’ 제작 현장. 좌측부터 정용수 음향감독, 시각장애인 이봉제(47) 씨, 김유은 PD. 부산영어방송 제공 부산영어방송 ‘손끝요리사-인생을 요리하다’ 제작 현장. 좌측부터 정용수 음향감독, 시각장애인 이봉제(47) 씨, 김유은 PD. 부산영어방송 제공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의 흥행으로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편견에 맞서 요리를 하는 이들이 있다. 칼을 써도 될까, 위험하진 않을까 하는 편견을 깨고 요리를 이어가는 시각장애인들의 이야기가 ‘흰 지팡이의 날’을 맞아 공개된다.

부산영어방송은 시각장애인의 날인 10월 15일 ‘흰 지팡이의 날’에 시각장애인의 요리 레시피를 담은 라디오 다큐멘터리 ‘손끝요리사-인생을 요리하다’를 공개한다고 14일 밝혔다. 부산영어방송 김유은 PD가 연출, 홍정화 작가가 구성을 맡았다. 15일부터 18일까지 오전 11시 40분에 부산영어방송(FM 90.5/103.3MHz)에서 방송된다.

방송문화진흥회 콘텐츠 제작 지원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은 네 명의 시각장애인 주인공이 만드는 요리를 통해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국내 최초 레시피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통해 시각장애인의 요리 노하우와 그들의 인생이 담긴 레시피를 소개한다.

그들이 만든 음식에는 삶, 도전 그리고 성장 스토리가 녹아있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와 구직 중인 시각장애인 취업준비생 박민혁(33) 씨는 간장 계란밥을 만들어 어머니께 대접한다. “간이 싱겁지 않고 딱 맞아 맛있다”는 어머니의 말에 박 씨는 “오늘은 간장계란밥으로 시작했지만 앞으로는 만둣국, 김칫국 등 평소에 엄마 좋아하시는 음식에 도전하며 엄마를 편안하게 해주겠다”고 답한다.

시각장애인 아내와 함께 두 아이를 키우는 시작장애인 정윤학(41) 씨는 가족을 위해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20살에 시각장애인 1급 판정을 받은 정 씨는 힘든 시기를 거쳐 부산맹학교에서 같은 처지에 있는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28살에 지압원을 창업해 14년째 운영하며 살고 있다. 정 씨는 “김치찌개는 아내가 잘 끓여줬던 음식인데 아내가 완전히 실명한 이후로 제가 음식을 하고 있다”며 “가장 평범하게 먹던 음식이 가장 소중한 음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이순옥(59) 씨는 배추김치를 만들어 16년 우정을 쌓은 활동보조사에게 대접했다. 이 씨는 “가끔 몸이 안 좋을 때마다 비슷한 나이니까 그도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내가 꼭 눈이 필요한 일을 해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같이 움직이고 같이 가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실내에서는 조금 편하게 해주고 싶다”며 김치를 건넸다.

물론 시각장애인에게 요리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제작진에게 감자수제비를 대접한 시각장애인 한국어 강사 이봉제(47) 씨는 “꽁치 김치찜을 하려고 동네 마트에 가 참치캔보다 약간 긴 꽁치캔을 집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백도였던 일이 있다”고 말했다.

나레이션을 담당한 부산맹학교 안나리 교사는 “캔이나 포장용기에 점자로 제품명을 넣어주면 좋겠다”며 “시각장애인에게 요리를 할 줄 아는지가 아니라 어떤 요리를 잘 하는지 물어볼 수 있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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