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횡령 범죄에도 징계 시늉만 내는 금융권
횡령 엮인 직원 10명 중 8명에
주의·견책 등 경징계 조치만
성희롱 정직 당해도 월급 보전
“사건 관련자 징계 수위 강화”
지난 7년여간 금융권에서 약 1900억 원 규모의 횡령이 발생했지만, 보조·방조·지시 등으로 사고와 관련이 있는 10명 중 8명은 경징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 신뢰 저하에 직결되는 횡령과 같은 사건에 금융권이 유독 관대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국내 금융업권별 임직원 횡령 사건 내역’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지난 8월까지 은행·저축은행·보험사·증권사 등에서 발생한 횡령액은 총 1931억 8010만 원이다. 횡령 사고를 낸 행위자는 192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환수 금액은 179억 2510만 원으로 환수율이 전체 9.3%에 그쳤다.
금감원이 2022년 11월 내부통제 혁신 방안을 발표하며 사고 방지를 집중적으로 주문해왔지만, 대형 횡령 사고는 연달아 터지고 있다. 2020년 20억 8290만 원 수준이던 횡령액은 2021년 156억 9460만 원, 2022년 827억 5620만 원, 작년 644억 5410만 원대로 불어났다. 올해 들어서만도 지난 8월 기준 횡령 규모는 140억 6590만 원에 달한다.
횡령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날 뿐 아니라 점점 대형화되는 것과 관련해 사고 관련자에 대한 ‘솜방망이식’ 징계가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횡령과 관련해 지시자·보조자·감독자 등에 위치에 있던 관련자 586명 중 20.7%(121명)만이 면직(6명)·정직(16명)·감봉(99명) 등 중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경징계 조치로 끝났다. 가장 수위가 낮은 조치인 ‘주의’가 304명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이밖에 견책이 159명, 기타가 2명이었다. 횡령 사고를 일으킨 행위자 137명에게 내려진 제재는 면직 130명(94.9%), 정직 5명(3.7%), 감봉 1명(0.7%), 기타 1명(0.7%) 등이었다.
강 의원은 “금감원의 천편일률적인 내부 통제방안으로는 매달 발생하고 있는 횡령 사고를 막을 수 없다”며 “사고자뿐 아니라 관련자에 대한 징계 수위 역시 강화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같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는 금융 공공기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5년 간 금융위원회 소관 예금보험공사, 중소기업은행, 한국산업은행 등에서 횡령이나 성희롱으로 정직 처분을 받은 직원에게 급여를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강명구 의원이 금융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소관 7개 기관 중 5곳에서 횡령이나 성비위 등의 사유로 정직 처분 받은 직원 60명에게 총 5억 3600만 원의 급여가 지급됐다.
특히 기업은행은 정직 처분을 받은 32명에게 3억 1400만 원의 급여를 지급했다. 이는 기관 중 가장 많은 세금을 징계자의 급여로 사용한 사례라고 강 의원은 지적했다. 또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성희롱으로 징계를 받은 직원에게도 정직 기간에 매월 330만 원을 보전해줬다. 산업은행도 예산을 횡령한 직원에게 1400만 원의 급여를 책정해 전달했다.
기획재정부는 2021년부터 관련 규정을 통해 정직 기간에 징계자에게 보수를 지급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 소관 5곳의 금융 공공기관은 이러한 지침을 따르지 않고 있다. 이유는 바로 ‘노사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