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지지 않는 소비자가 되는 법
소비자 보호 프로그램 취재기
일상 속 상술로 본 현명한 소비
키오스크 등 미래 문제도 짚어
■누가 우리를 속이는가/안석호
불 꺼진 영화관을 유심히 살펴보면 먼지가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사기에 비친 먼지의 모습은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한다. 영화에 집중하다 보면 먼지에 대한 생각은 이내 사라지지만, 먼지가 어느새 우리의 코와 입속을 점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상영관 내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해 보면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환경부가 지정한 영화관 미세먼지 기준은 0.150㎎/㎥ 이하이지만 한 영화관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자 0.253㎎이 나타났고, 또 다른 영화관에서는 0.188㎎ 수준을 보였다. 이렇게 쌓인 미세먼지는 팝콘과 콜라를 거쳐 관객의 코와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영화관 청소 상태는 열악했다.
1개의 상영관에서 영화 상영이 종료되면 1~2명의 청소 인력이 상영관을 청소한다. 하지만 다음 영화가 곧 시작되는 탓에 제대로 된 청소가 쉽지 않다. 영화관 의자의 교체 주기도 10년을 훌쩍 넘는다는 조사도 있다. 유감스럽지만 관객들의 코와 입은 앞으로도 먼지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누가 우리를 속이는가>는 소비자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위험한 상술과 현명한 소비’라는 부제답게 소비자를 기만하는 상술을 꼬집는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특급호텔의 비위생적인 청소 실태나 병원의 일회용품 재활용 문제 등을 지적하는 책이다. TV조선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CSI: 소비자 탐사대’에서 방영된 내용을 토대로 취재 과정과 생생한 뒷이야기를 풀어냈다. 책에서 다루는 소재들이 우리가 매일 겪는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높인다.
책은 악덕 업주의 만행을 고발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부분도 다룬다. 예를 들어 흔히 사용하는 키오스크의 위생 문제다. 정부가 권고한 세균 오염도의 공중위생 기준치는 400RLU다. 하지만 은행 현금지급기 ATM에서는 1888RLU가, 버스터미널의 무인 발매기에서는 1394RLU가 측정됐다. 영국의 한 대학에서는 맥도날드 9곳의 키오스크에서 어떤 세균이 검출되는지 조사했는데, 실험 대상 키오스크 모두에서 장염을 일으키는 대장균이 검출됐다. 사람 대변에서 검출되는 프로테우스균이 나온 곳도 6곳이나 됐다. 내가 만진 키오스크를 누가 건드렸는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커진다. 비대면 시대에 맞춰 점차 성장하는 키오스크 시장이 두려운 이유다. 이 밖에도 우후죽순 늘어나는 민간 자격증, 동물 사체로 만드는 반려견 사료, 신랑 신부를 울리는 국제결혼중개업체, 세균 범벅 테스터 화장품 등의 사례도 지적한다.
저자는 “시장은 전쟁터”라고 정의한다. 정보를 독점한 생산자와 판매자는 갖가지 꼼수와 반칙으로 소비자를 속이고,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 한다. 소비자는 서비스나 재화를 구매하는 순간부터 약자인 ‘을’의 위치에 서게 된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해야 한다. 최근 고객응대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되면서 ‘손님이 왕’인 시대는 저물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는 여전히 매우 중요한 주체다. 좋은 업체에는 ‘돈쭐’을, 나쁜 업체에는 ‘불매’를 선사하는 것도 소비자다. 온라인을 통해 정보 획득이 쉬워지면서 좋은 제품을 현명하게 구입하는 법을 공부하는 똑똑한 소비자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비양심적인 업자들이 소비자를 위협한다. 그런 맥락에서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이런 책은 세상에 많이 나오는 편이 좋다. 안석호/북레시피/328쪽/1만 9000원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