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소나무 표준 유전체
산림청이 목하 비상이다. 이달부터 소나무재선충병(이하 재선충병) ‘총력’ 방제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총력’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다. 있는 힘을 다 기울여도 모자랄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 대구로 가는 길에 지나는 산들을 보노라면 대부분 적갈색이다. 단풍인가 싶어 보면, 아니다. 소나무들이 죄다 재선충병에 걸려 죽어 있다. 피해 지역이 전국적으로 150여 개 시·군에 이른다는데, 밀양 등 영남 지역의 피해가 극심하다.
확산세가 워낙 빠르고 범위도 광대하다보니, 경남도는 방제 대신 아예 산의 소나무를 몽땅 없애고 참나무 등 병해충에 강한 다른 나무로 바꿔 심을 참이다. 실제로 경남도는 지난 22일 밀양에서 관련 사업 설명회를 가졌다. 경남도는 재선충병을 국가재난 차원에서 대응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근래 재선충병이 기승부리는 이유로 기후 변화를 꼽는 이가 있다. 이상고온으로 매개충 활동 시기가 길어지면서 재선충병이 급속도로 확산한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나 그게 다는 아닌 듯하다. 현 정부의 방제 의지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재선충병은 급확산하는데도 관련 예산을 오히려 줄인 것이다. 실제로 국비 기준 2023년 재선충병 방제 예산은 933억 원이었는데 2024년엔 805억 원이었다.
재선충병은 1988년 부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재선충병으로 인해 잘려나간 나무가 1500만 그루고, 피해액은 1조 2000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여태껏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 걸린 나무는 100% 죽는다. 산림 당국과 지자체들의 끈질긴 방제 조치로 한동안 소강 상태였는데, 최근 3년 사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소나무를 비롯해 해송, 잣나무 등이 괴멸적 타격을 입어 이대로라면 10년 안에 우리나라 소나무류 80%가 사라진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런 형편에 한 줄기 반가운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산림과학원·서울시립대 공동연구팀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소나무 표준 유전체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표준 유전체는 일종의 염색체 염기서열 지도인데, 관련 논문이 유전학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에 게재될 정도로 신뢰도가 높은 모양이다. 해당 표준 유전체는 기후 변화에 강한 소나무를 기르고 재선충병 등을 조기 진단하는 기술 개발에 활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모쪼록 우리 산들이 소나무로 다시 푸르러지는 데 특효가 있기를 바란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