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구매 상담만 수백 건”… 부동산 회사와 고객 다리 역할 [부산 '빈집 SOS']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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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일본 도쿄의 빈집 은행

일 민간 빈집 은행 대표 만나 보니
“외국인 포함 수요 폭발적 증가세
일원화한 시스템 구축 필요 절감
K-문화로 한국도 거래 가능성 커
즐겁게 사는 모습 초기 홍보 중요”

일본 도쿄의 빈집 플랫폼인 ‘아키야 앤드 이나카’가 중개하는 빈집 매물들. 부동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빈집을 찾아준다. 아키야 앤드 이나카 제공 일본 도쿄의 빈집 플랫폼인 ‘아키야 앤드 이나카’가 중개하는 빈집 매물들. 부동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빈집을 찾아준다. 아키야 앤드 이나카 제공

한발 앞서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경험한 일본은 한국보다 빈집 문제를 일찍 마주했다. 지난해 10월 기준 일본 당국이 집계한 일본 내 빈집은 900만 채로 5년 전 조사보다 51만 채 늘어났다. 다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일본은 빈집 문제 대책도 서둘러 마련했다. 특히 빈집을 사고파는 플랫폼인 ‘빈집 은행’은 일본 1700여 개 기초 지자체 중 절반 이상이 독자적으로 구축하고 있을 정도다.

최근 부산 중구청이 빈집 은행 시행을 예고하는 등 국내에서 빈집 은행 도입이 이뤄지고 있어 일본 사례가 더 주목받는다. 일본은 오랜 운영 경험 덕에 빈집 은행의 장점과 한계도 세밀하게 파악한 상황이다. 〈부산일보〉가 일본 도쿄를 찾아 빈집 은행 플랫폼 운영자 등을 만나 한국에서 빈집 은행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 등을 취재했다.

■빈집 중개업체에 쏟아지는 상담 문의

지난 15일 찾은 일본 도쿄의 빈집 플랫폼 ‘아키야 앤드 이나카’(AKIYA&INAKA)엔 매달 상담만 수백 건 쏟아진다. 2020년 8월 설립된 아키야 앤드 이나카는 전용 홈페이지, 플랫폼 등을 만들어 전문 부동산 회사와 고객이 빈집 매매에 성공할 수 있도록 중간 다리 역할을 자처하는 민간 업체다.

이 회사 아렌 파커(35·미국) 대표는 부동산 회사와 달리 빈집을 매물로 소유하거나 판매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고객으로부터 ‘빈집을 사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오면 조건에 맞는 빈집을 찾아서 부동산 회사와 연결해주는 영업 방식을 취한다.

빈집 수요가 몰리는 것은 전문성과 효율성,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전국에 빈집 플랫폼이 너무 많다 보니 고객이 직접 빈집을 찾는 일이 너무 어려워 전문회사 도움을 받는다.

아렌 대표는 “일반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빈집을 어디에 가서 찾을 수 있는지 모른다”며 “우리 회사는 전국 부동산 회사와 제휴를 맺은 덕분에 부동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빈집을 찾아준다”고 설명했다.

민간 업체가 빈집 매매를 중계하는 것은 일본에서도 흔하지 않은 서비스다. 아렌 대표는 “2020년 설립 당시에는 우리 회사가 유일했고, 지금은 전국에서도 3개 업체 정도밖에 없다”고 말했다. 행정기관이 아닌 민간 업체가 빈집 매매에 관여하는 일본의 사례는 빈집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을 준다. 행정기관 예산과 행정력은 한계가 있기에 민간의 개입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의 빈집 플랫폼인 ‘아키야 앤드 이나카’가 중개하는 빈집 매물들. 부동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빈집을 찾아준다. 아키야 앤드 이나카 제공 일본 도쿄의 빈집 플랫폼인 ‘아키야 앤드 이나카’가 중개하는 빈집 매물들. 부동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빈집을 찾아준다. 아키야 앤드 이나카 제공

■빈집 은행 너무 많아 오히려 독

일본 기초 지자체들은 너나 없이 빈집 은행 운영에 나섰다.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독이 됐다. 운영 방식이 다른 플랫폼을 유지하고, 매매 방식 역시 상이한 경우가 많다. 현재의 일본 빈집 은행 시스템이 효율성이 떨어졌다고 지적받는 이유다.

빈집 은행 정보도 부실하다. 대개 넓이, 연식 등 간단한 정보만 기재하고 있어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빈집 중계업체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역 부동산 회사에 직접 연락해 별도로 정보를 파악하고, 고객을 위한 프로필을 작성하기도 한다. 아렌 대표는 “집의 넓이, 연식 등 간단한 정보는 있으나 방 배치도 같은 정보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빈집 은행 도입 초창기인 한국이 참고해야 할 지점이다. 각 지자체들이 저마다 빈집 은행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보다 전체 빈집 거래를 중계하는 일원화된 시스템을 구축해야 고객 편의에 맞출 수 있다는 얘기다. 빈집 수요자들이 저마다 다른 요구를 한다는 점에서 세밀한 정보를 담을 플랫폼 구축도 필요해 보인다.

■빈집 은행 초기 출발의 중요성

빈집 은행을 갓 도입하려는 한국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초기 홍보’다. 빈집 거래가 활성화됐다고 평가되는 일본에서도 일반인들은 빈집 매매 과정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아렌 대표는 “빈집 은행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소는 초기 홍보”이라며 “블로그,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빈집을 구매하는 방법뿐 아니라, 해당 빈집에서 행복하고 재밌게 사는 모습들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키야 앤드 이나카’의 아렌 파커 대표가 빈집 은행 제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아키야 앤드 이나카’의 아렌 파커 대표가 빈집 은행 제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해외 고객층까지 감안한 빈집 은행 시스템 구축 필요성도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외국인 구매 수요가 적지 않다. 장기간 휴가나 해외 살기에 익숙한 미국과 유럽에서는 장기간 거주할 장소로 빈집을 택하기도 한단다. 영화 드라마 등 ‘K-문화’가 저력을 떨치는 상황에서 이런 수요 역시 한국 빈집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이다.

아렌 대표는 “한류에 반한 외국인은 자연스레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며 “그에 따른 언어 지원, 웹페이지 구축은 필수다. 제도나 행정도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빈집 은행, 모든 문제 해결 못해

일본에서도 빈집 은행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상담이 쏟아지고 거래도 심심찮게 일어나지만 기존 빈집에 향후 발생할 빈집이 너무 넘쳐 이를 모두 소화할 만큼 매매가 활발하지는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빈집 은행만으로는 빈집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빈집 은행의 가치는 명확하다. 일본에서도 빈집 은행이 활성화되면서 빈집은 ‘어쩔 수 없이 두는 곳’에서 거래가 가능한 대상으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 왔다. 그는 “일본에 있는 빈집 900만 채가 매매되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럼에도 빈집 은행이 빈집의 매력을 알리는 계기가 되고, 부정적 인식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도쿄(일본)/글·사진=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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