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앱서 만난 여성 말만 믿고…40·50대 남성 65억 뜯겼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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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경찰, 23명 검거해 18명 구속
로맨스스캠에 투자 사기 등 저질러
캄보디아 거점 둔 중국 조직과 연루


캄보디아에 거점을 둔 사기 조직 검거 개요. 울산경찰청 제공 캄보디아에 거점을 둔 사기 조직 검거 개요. 울산경찰청 제공


“혼혈이어서 한국어를 잘 못해요.”

올해 1월 40대 A 씨는 데이팅앱에 접속했다가 호감을 주는 여성을 만났다. 두 달 가까이 서로 관심사를 물으며 자연스레 주식 얘기로 가까워졌다. “삼촌이 주식 전문가인데…” 한국말이 서툰 여성은 A 씨의 경계심을 풀며 주식 거래사이트 주소를 보내 가입하게 했다. A 씨는 고수익을 낼 수 있다는 말에 수백만 원씩 여러 차례 돈을 맡겼다. 사이트에는 수익금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렇게 여성은 A 씨에게서 수천만 원을 챙긴 뒤 돌연 연락을 끊었다.

경찰에 신고한 A 씨는 그 여성이 실은 범죄 조직의 남자 조직원이며, 주식 거래사이트도 가짜였다는 사실을 듣고 허탈해 했다. 무심코 데이팅앱에 기재한 직업, 자산 수준 등이 범죄의 타깃이 됐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피해 금액은 이미 중국 상위 조직에 가상화폐로 상납돼 행방을 알기 힘든 상황이었다.

울산경찰청 형사기동대는 범죄단체조직,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조직원 23명을 검거해 모집책 겸 콜센터 관리자 30대 A 씨 등 18명을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들은 2023년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투자리딩방과 로맨스스캠(연애 빙자 사기) 같은 수법으로 부산, 울산 등 전국의 피해자 61명에게서 총 65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는 주로 데이팅앱을 쓰고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40, 50대 남성이 많았다. 한국인 상담원들이 여성인 척 피해자와 친분을 쌓은 뒤 중국 조직원에게 넘겨 주식, 암호화폐 등에 투자하도록 꾀어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편취했다. 투자에 관심 없는 피해자에게는 ‘몸캠 피싱(신체 불법 촬영 협박)’으로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3억 원을 빼앗긴 피해자도 있다.

중국 범죄 조직에 속한 A 씨 등은 ‘고수익 국외취업’을 내세워 20대 사회초년생 16명을 모집, 캄보디아에 보내 범행에 가담하게 했다. 이들 상담원은 대부분 “해외 호텔에서 편하게 일하며 월 500만~100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결국 범죄에 발을 담갔다.

중국 조직은 캄보디아에 20층짜리 카지노 건물을 사들여 콜센터까지 차리고 일본, 중국, 한국 등 조직원을 대거 수용해 ‘백화점식 범죄’에 악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수괴급 조직원 6명을 인터폴 적색수배를 통해 추적하고 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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