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개입? 광 팔기?…명태균 녹취에 계속 나오는 윤 대통령·김 여사
김 여사 ‘김영선 공천은 선물’, ‘윤 총장 여론조사 빨리 달라했다’ 등
명-강혜경 통화 녹취 쏟아지나, 명 씨의 ‘전언’일 뿐 실제 음성·녹취는 없어
명태균은 “조사 독촉하기 위해 광 판 것”…선거 개입 판단 아직은 섣불러
김건희 여사가 각종 선거에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더하는 ‘선거 브로커’ 명태균 씨의 통화 녹취록이 최근 언론을 통해 쏟아지고 있다. 사실이라면 ‘공천 개입’ 의혹을 입증할 자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공개된 녹취 대부분이 명 씨가 이번 의혹을 터트린 강혜경 씨와의 통화에서 일방적으로 주장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해당 녹취 만으로 김 여사의 선거 개입을 섣불리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단 명 씨는 강 씨에게 여론조사를 독촉하기 위한 ‘광 팔기’였다는 취지로 해명하고 있다.
29일까지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된 명 씨와 강 씨의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명 씨는 강 씨에게 여론조사를 지시하면서 ‘김 여사가 궁금해한다’ ‘윤 총장(윤 대통령)에게 갖다줘야 한다’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 씨는 2022년 6·1 지방선거를 이틀 앞둔 5월30일 강 씨에게 “서울시장 선거, 1000개 (여론조사를)돌려보세요. 바로 오늘 달라고 하네. 사모님(김 여사)이 궁금하대요”라고 지시했다. 앞서 명 씨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이 진행 중인 2021년 9월 30일 강 씨와의 통화에서 “윤 총장이 전화했는데 궁금해하더라”면서 윤석열 유승민 홍준표 원희룡 하태경 최재형 등을 넣은 경선 후보 지지율 여론조사를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해당 조사는 명 씨가 실질적 운영자인 것으로 알려진 미래한국연구소가 실제 미공표용으로 실시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에 명 씨는 대선 7일 전인 2022년 3월 2일에도 강 씨에게 “그거(여론조사 결과) 빨리 달라고 그래요. 윤석열이가 좀 달라고 그러니까”라고, 그 다음 날에도 “오늘 다 (여론조사 결과)뽑아줘야 해요. 윤석열 총장이 저 문자가 왔네”라고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화 내용만 보면 윤 대통령 내외가 대선 전 뿐만 아니라 대선 이후에도 명 씨와 수시로 통화와 문자를 하면서 선거 문제를 면밀히 상의했다고 의심할 만하다. 만약 명 씨가 윤 대통령이나 김 여사의 요청을 받아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무상 또는 유상으로 제공했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 그러나 해당 발언은 모두 강 씨와의 통화에서 명 씨가 언급한 발언으로, 실제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발언이 음성이나 녹취로 드러난 것은 현재까지 없다. 미래한국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했던 강 씨는 김영선 전 의원의 회계 책임자 및 보좌관을 지냈고, 현재 김 전 의원으로부터 사기·횡령 혐의로 고발 당한 상태다. 한 여권 인사는 “명 씨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윤 총장’과 ‘여사’를 반복적으로 언급한 것이 석연치 않다”며 “정치권 유력 인사들과 연줄을 만들기 위해 여론조사를 이용한 명 씨가 비용 문제를 피하기 위해 대통령 내외를 내세운 것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실제 명 씨도 “(내가 의뢰한 것이)돈 안 되는 거면 (강씨가)짜증 나지 않겠나”라며 “‘윤석열한테 갖다줘야 돼. 빨리 갖다줘야 돼’ 그렇게 해서 광을 팔아야 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김 여사가 과거 명 씨에게 ‘완전 의지한다’는 문자를 보낸 것으로 볼 때 일부는 사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천 개입 의혹의 발단이 된 김영선 전 의원의 2022년 경남 창원의창 국회의원 보선과 관련해 명 씨가 김 여사를 언급한 통화 내용도 추가로 나왔다. 명 씨는 국민의힘 공천 발표 약 일주일 전인 그해 5월 2일 강 씨와의 통화에서 “여사가 ‘김영선 (공천) 걱정하지 마라. 자기 선물’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 김 전 의원은 이후 단수 공천을 받았다. 이후 명 씨는 22대 총선을 앞둔 2023년 11월 김 전 의원이 당무감사에서 낙제점을 받자 강 씨에게 “(김 전 의원이)당무감사 꼴등했다. 내가 여사한테 연락했다. 여사가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여사는 명 씨의 거듭된 김 전 의원 구명 요청에 ‘경선이 원칙’이라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 관계자는 “김 여사가 명 씨와 공천 문제를 얘기한 것을 맞지만, 실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인지, 단지 들은 내용을 알려준 것인지는 알 수 없다”며 “공천 관련 언급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을 순 있겠지만, 이를 공천 개입으로 단정하기는 아직 이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윤석열 대선 캠프 전략기획부총장이었던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은 이날 명 씨의 미래한국연구소가 작성한 비공표 여론조사를 대선 당일 캠프에서 회의 자료로 썼다는 의혹과 관련, “명 씨와는 모르는 사이다. 미래한국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나 관련 보고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관련 주장을 한 당시 캠프 관계자와 보도한 언론사 기자를 경찰에 고소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