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귀벌레와 수능 금지곡
길을 걷다가 우연히 어떤 노래를 듣고 하루 종일 그 노래 가사와 멜로디가 머릿속을 맴돈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특정 노래의 멜로디가 계속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것을 귀벌레(earworm) 현상 또는 귀벌레 증후군이라고 한다. 90%가 넘는 사람들이 이런 현상을 겪어봤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문학의 악몽〉이라는 단편집에서 귀벌레 증상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는 머릿속에 박힌 짧은 선율이 자신의 집중력을 방해한다고 했다.
귀벌레 현상은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안 좋게 인식하지만, 사실 이는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한 우리 몸의 방어기제 중 하나다. 긴장, 공포, 고통 등을 느낄 때 우리 몸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하고, 뇌는 이를 완화하기 위해 한곳에 집중된 관심을 분산시키려 노력한다. 귀벌레 현상은 기억에 남은 노래를 떠올려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유도해 긴장된 뇌를 이완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 있다. 하지만 시험을 보거나 집중해야 하는 순간에 귀벌레 현상이 나타나면 참 난감하다. 특히 수험생의 경우 이런 현상으로 인해 갑자기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노랫말과 멜로디가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아 수험생의 집중력을 해치는 음악을 흔히 수능 금지곡이라 칭한다. 통상 수능 금지곡 선정은 음악 관련 업체의 마케팅 전략 중 하나지만, 많은 수험생이 금지곡 선정에 공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 블랙핑크의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부른 ‘아파트(APT)’가 MZ세대 사이에서 수능 금지곡으로 꼽히고 있다. 이 곡은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함께 ‘아파트’라는 후렴구가 60번이나 반복된다. 과거에는 이정현의 ‘바꿔’ 원더걸스의 ‘텔미’ 샤이니의 ‘링딩동’ 등이 수능 금지곡으로 꼽혔다. 귀벌레를 퇴치하는 데에는 껌 씹기가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청각 기관과 말하는 기관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데, 말하는 기관을 껌 씹는 데 사용하면 청각 기관이 귀벌레 유발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유튜브에는 중독성 강한 멜로디를 잊게 도와주는 귀벌레 지우개 영상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귀벌레 현상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상이다. 예민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신체 활동으로 여기는 여유로움이 필요해 보인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모든 수능 수험생에게 “고생했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