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도자 예술의 새로운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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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

중국 백자의 중심지 ‘징더전’ 옛 명성 회복
역사·문화·산업 결합, 생산-소비 생태계 구축
국제교류가 큰 역할… 우리도 참고해 볼 만

얼마 전 지역의 중견 도예가들과 함께 ‘2024 중국 징더전 타오시촨 도자 축제’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판매가 이전 같지 않은 한국 도자기 시장에 비해, 상당히 잘 팔리는 중국의 상황에 필자와 도예가들은 매우 놀라기도 했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함께 간 도예가들의 도자기 소품 판매 실적도 꽤 좋았다. 이는 일정 부분 중국인들이 차를 즐겨 마시고 도자기를 특별하게 선호하는 데서 비롯된 것일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역사-문화-산업-관광으로 연결되는 생태계 효과라고 생각되었다. 특히 필자는 그곳의 문화적 생태계의 강점을 두텁게 형성되어 있는 다층성과 다양성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세계적인 도자기 수출국인 중국에서도 백자의 대표적 산지인 징더전(景德鎭)은 이천·강진·남원·공주·양구·부안 등 도자기로 유명한 국내 여러 도시들과 국제교류 관계를 맺어 국내에도 잘 알려진 도자기 도시이다. 징더전은 중국 한나라(기원전 202년~기원후 220년) 때부터 도자기를 굽기 시작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송대에는 도자기 공물로 유명해졌다. 이후 명·청 시대를 거치며 기교와 조형 감각이 뛰어난 다양한 크기와 색채의 백자들이 크게 발달했을 뿐 아니라 이슬람·유럽 지역 등과 활발한 자기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18세기 징더전 도자기 생산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후 공장제 대량생산 시스템과 플라스틱 소재 식기가 출현하면서 도자기 산업이 타격을 입고 판매와 유통이 줄어들었고, 많은 지역민들이 도자기 생산 관련 일에 종사하며 살아가던 징더전은 도시 전체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랬던 그 도시가 십여 년 전부터 다시 활기를 되찾고 옛 명성을 회복해 가고 있다. 도시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 것은 역사-문화-산업-관광이 밀도 높게 융합됨으로써 문화 생산과 소비의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명·청 시대 황실 도자기 가마터 등의 유적과 함께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근대 도자기 공장 굴뚝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 도시가 걸어 온 오랜 역사적 아우라를 내뿜는다. 원형 가마, 터널식 가마, 셔틀식 가마 등의 발전 과정을 볼 수 있는 공장 유적, 그리고 광석차·파쇄기 등의 전시품과 함께 근대 도자기 제조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징더전 도자기공업유산 박물관을 비롯한 풍부한 역사 콘텐츠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 징더전에는 도자기 산업 관련 전 분야가 가동 중이다. 흙이나 유약 같은 도자기 재료·장비 등을 제작하는 공장과 재료상, 도자기를 판매하는 다양한 형태의 판매점, 도자기 관련 전문 분야 인력들을 배출하는 대학들이 여럿 있다. 특히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도자기 시장의 형태와 층위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매우 값비싼 도자기들이 거래되는 고급 쇼룸(상품 전시장)에서부터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을 만한 가격의 도자기들이 판매되는 주말 도자조각 시장에 이르기까지.

뿐만 아니라 매년 5월과 10월 국제적인 대규모 축제가 도시 전체에서 동시에 펼쳐지고, 여기에 참여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도자·공예 관련 분야 예술가들과 애호가들이 찾는다. 이때도 다채로운 층위의 행사들이 함께 열리기 때문에 각자 개성에 따라 선택과 향유의 폭이 매우 넓다.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도자기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전시,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는 학술 행사, 징더전의 도자 산업에 관한 포럼, 학생들부터 기성 작가들까지 부스에서 작품을 판매하고 있어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작품도 구입할 수 있는 아트마켓, 또 세계적인 도자기 회사와 기관들이 참여하는 엑스포, 다양한 국가의 민속 공연에 이르기까지, 정말이지 종합선물세트를 받아 든 기분이 들게 된다.

징더전이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게 된 중요한 계기는 국제교류였다. 5월과 10월 행사에 수년 전부터 다양한 국가의 유명 작가와 도예가들을 초청하여 축제가 국제적인 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러자 중국 안에서도 더 많은 내국인들이 그곳을 방문하는 연쇄효과로 이어졌다. 한두 번 초청되어 종합선물세트같은 징더전 축제를 경험한 해외 도예가들은 이제 자비를 들여서라도 매년 이 축제에 방문한다고 한다. 해외 도예 작가들은 징더전 공방들과 협업하여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는데, 해외 작가들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아이디어와 징더전 공방의 뛰어난 전문적 기술이 융합되어 전례 없는 멋진 작품들이 탄생하는 경우도 많다.

올해 12월 개소 예정인 김해공예창작지원센터도 역사-문화-산업-관광을 연결, 융합하는 생태계를 잘 조성해서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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