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축제가 된 김장
김장의 계절이다. 1960~1980년대 어머니들은 겨울이 다가오면, 연탄과 쌀, 그리고 김치만 있으면 부자가 된 것 같은 편안한 마음을 가졌다. 추운 겨울에도 식구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치는 그만큼 우리 민족의 고유 음식이다. 김장하는 날이면, 동네 아주머니와 친척들이 빨간색 고무장갑을 끼고 배추를 자르고, 양념을 넣으면서 왁자지껄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사 간 집 마당을 파고 장독을 묻기도 했다. 집집마다 ‘김치를 담고, 함께 먹는 김장’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갖는 기억이다. 유네스코에서도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를 2013년에 ‘인류가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산’이라며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올렸을 정도이다.
과거에도 한민족은 김치에 진심이었다. 단원 김홍도의 스승이기도 한 조선 후기 화가·학자 김창업은 청나라 연경에 사신으로 가서 들은 교포 2세의 사연을 ‘노가재연행일기’(1712)에 기록했다. 당시 연경에서 만난 69세 노파는 부모가 병자호란에 청나라로 끌려왔고 자기는 손녀와 함께 조선식으로 김치와 장을 만들어 팔아 살고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K김치가 그때에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조선 헌종(1827~1849) 때 실학자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에도 김장 노래가 나온다. ‘무·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다/ 앞 냇물에 정히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는 내용이다.
대표적인 발효식품인 김치에 함유된 식물성 유산균과 식이섬유는 소화를 증진시키고, 변비와 대장암을 예방하고, 콜레스테롤을 분해한다고 한다. 또한, 성인병과 체중 감소, 위궤양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기는 힘이라는 것은 많은 이가 경험했다. 한민족의 정체성과 함께 건강에도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김장철을 맞아 지자체와 기업, 봉사단체 등에서 대규모 김장 행사를 곳곳에서 벌이고 있다. 김치 없이 겨울을 보내는 가난한 이웃까지 돌보는 것이 한반도의 김장 문화이기도 하다. 부산에서도 사회복지시설 등 소외계층에 김치가 보내진다. 배추와 고춧가루, 마늘, 액젓 등 좋은 재료에 정성까지 듬뿍 담겨 있다. 이를 통해 가족과 사회에서 ‘김치를 담고, 나누는 김장 문화’를 전승하고 축제로 승화하고 있는 셈이다. 점점 혹독하게 추워지는 겨울을 맞아 하얀 쌀밥에, 겉절이를 쭉 찢어 돼지고기 수육에 얹어 먹는 그 감칠맛을 모두가 나눴으면 좋겠다. 우리 공동체가 꼭 간직해야 할 건강한 맛, 아름다운 멋이기 때문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