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마음속 탄핵’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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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용의 해’라던 2024년 갑진년이 허망하게 저문다. 희망보다는 분노와 광기, 황당함이 한반도를 덮치고 있다. 얼어붙은 시국에 영하권 추위가 세상을 강타해 9일 아침 부산은 영하 2도, 서울은 영하 9도까지 떨어졌다. 나라 걱정까지 해야만 하는 국민의 체감온도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겨울은 대설(12월 7일)을 지나 동지(12월 21일)로 가고 있다. 대설은 눈이 많이 내리는 시기다. 눈이 많이 오면 온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해충들이 죽어 농사에 아주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대설은 세상 모든 만물은 왕성한 것이 극도에 다다르면 쇠약해지기 시작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곧, 해가 점점 짧아지면서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지다. 동지로 대표되는 겨울은 죽음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겨울의 간난은 겪어야겠지만, 이날부터 해가 길어지면서 봄이 온다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고대 사람들은 동지는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이라면서 태양신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한반도에서는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었다. 팥죽은 귀신을 내쫓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팥죽 국물을 대문이나 문짝에 뿌리는 풍습도 있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했다.

날은 점점 춥고 어두워지고, 세상은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투성이다. 어려운 세상에 국가를 이끌라고 뽑아 놓은 대통령이 주권자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내란을 벌이는 판국이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이 벌인 ‘친위 쿠데타’의 후폭풍이 매서운 겨울바람을 몰고 온다. 국민만 춥고 서럽다. 나라 전체가 최소한의 상식과 법률, 도덕조차 없이 어둠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와중에도 정치권은 정치적 이해득실 계산과 갈지자 우왕좌왕으로 일관하고 있다.

동지가 가까울수록 세상이 점점 캄캄해진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라도, 하나하나 상식으로 풀어야 한다. 국회의 탄핵은 실패했더라도, 국민의 ‘마음속 탄핵’은 벌써 끝났다. 최종 책임자인 당사자가 물러나는 길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마음이다. 국민이 동의하는 수사기관이 나서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해야 한다. 이번 동짓날에는 팥죽이라도 넉넉하게 쑤어 여기저기 뿌릴까 보다. 더 이상 몹쓸 액운이 국가의 앞길을 막지 못하도록 잡귀들을 몰아내야 할 판이다. 백성이 나서서 나라를 챙겨야 하는 세상, 참으로 해괴하고 괴상망측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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