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3면이 바다로 둘러싸였다? 3면이 바다로 열렸다!
태평양 항해 / 박길성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가 아니라 3면이 바다로 ‘열려있는’ 나라입니다.” 지난달 부산을 찾은 고려대 박길성 명예교수의 강연 내용이다. 강연장을 찾진 않았지만 후일 기사를 통해 그 내용을 읽고 박 교수의 바다에 대한 시각에 무릎을 쳤다. “말장난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언어는 사고를 형성한다. 최근 박 교수는 자신의 바다에 대한 시각을 오롯이 담아낸 책을 출간했다. <태평양 항해>는 저자가 한 달간 해군 훈련함 한산도함에 탑승해 태평양을 항해했던 경험을 옮긴 책이다.
태평양이라는 드넓은 바다 위에서의 긴 항해는 일반인에게 흔치 않은 경험이다. 부럽다. 함대에서의 생활은 극과 극을 오간다. 대양(大洋)을 항해하며 중심과 주변의 구분도 경계도 없는 광활한 자유를 느끼는 한편, 좁은 함대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는 상반된 경험을 동시에 하게 된다. 이런 특별한 경험이 저자 특유의 느긋하고 유쾌한 문체로 흥미롭게 전개된다. 해군들과 흥겨운 단합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기항지에서 만난 교민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기도 한다.
유쾌한 경험담 속에서 사회학자인 저자의 통찰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큰 매력이다. 무풍지대인 적도를 항해한 경험에서 한발 더 나아가 발전의 동력을 잃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한다.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면서 그곳에 닥쳐온 환경문제에 대한 염려를 함께 전했다.
저자는 태평양에서 보낸 시간을 모험의 시간이었고, 성찰의 시간이었으며, 경계를 넘는 시간이었고, 미래를 보는 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항해하며 좌표를 확인하는 것이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함이듯, 책은 여정을 기록한 여행기이자 성찰을 담은 명상록으로서 미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박길성 지음/나남/242쪽/1만 8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