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못 가니 피폭 이야기 절대 꺼내지 말아라”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내년 원폭 투하 80년 앞두고
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
회원 19명 애절한 목소리 담아


김광자 시인을 비롯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 회원 19명의 증언을 모은 책 <잊을 수 없는 그날의 記憶들>이 출간됐다. 정종회 기자 jjh@ 김광자 시인을 비롯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 회원 19명의 증언을 모은 책 <잊을 수 없는 그날의 記憶들>이 출간됐다. 정종회 기자 jjh@

■잊을 수 없는 그날의 記憶들/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

내년이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80년이 된다. 이를 앞두고 (사)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가 회원 열아홉 명의 증언과 부산지부 활동 모습을 수록한 <잊을 수 없는 그날의 記憶들>을 발간했다. 처절한 피폭 실상에 대해 80년 동안 침묵해 왔던 피폭자들의 애절한 목소리를 담은 것이다. 대부분 고령인 피폭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원고는 그대로 게재하기에는 부적절한 표현이 많아 한 사람당 평균 15번의 힘든 수정 및 교정 작업을 거쳐야 했다고 한다.

부산시인협회 이사장을 지낸 김광자(81) 시인이 이 책의 편집 주간을 맡았고, <부산일보>에 직접 들고 찾아왔다. 김 씨는 당시 세 살에 불과했지만 나가사키에 살았던 부모로부터 그때 일을 수백 번 넘게 들어서 잘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본보도 이 책에서 김 시인이 쓴 ‘파란만장한 통한의 삶을 새기며’라는 글을 요약 정리해 그 실상을 알리는 데 참여하기로 했다.

1945년 8월 9일 일요일. 천둥 벼락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붉은 불빛의 섬광이 번쩍했다. 유리가 깨어져 박살이 나면서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세 식구 몸을 찌르고 박혔다. 동시에 이층 목조 건물 우리 집이 폭삭 내려앉았다. 아버지 어머니는 부서지는 목조 건물에 깔려 기절했다. 두 분이 깨어나서 보니, 나는 아랫도리에 불이 붙은 상태로 변소에 처박혀 있었다. 아버지가 불을 끈 뒤 나를 업고 집 앞 방공호로 대피했다. 방공호 안은 물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로 아비규환이었다. 물을 주면 피폭 화기로 금방 죽기 때문에 살인 행위로 여겨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목이 말라 물속으로 뛰어들어 죽어 가는 피폭자들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11일 방공호를 나와 나가사키를 떠나기로 했다. 기차역까지 가는 동안 원폭으로 사망한 시체 더미를 넘고 넘었다. 여름철이라 불에 탄 시체에는 까만 파리 떼와 하얀 구더기가 꿈틀댔다. 나는 하얀 구더기 떼를 보고 그게 흰 쌀 밥알인 줄 알고 “배가 고프다. 저것 맘마 달라”고 보챘다. 부모님은 태어나서 그렇게 지독한 냄새는 그때 처음 맡았고, 송장 썩는 악취가 아니면 어떠한 악취도 견딜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우리 집은 원자폭탄이 떨어진 장소에서 2㎞ 거리에 있었다. 나중에 이웃 소식을 알아보니 우리 세 식구만 살아남았다. 8월 15일 라디오에서 천황의 항복 육성이 흘러나왔고, 광복을 맞이했다.

부모님은 한국으로 귀환하기로 했다. 시모노세키에서 밀항 목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기관 고장으로 배 시동이 꺼져 다시 한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힘들게 돌아왔지만 공중목욕탕에 가면 상처 때문에 나병 환자 취급을 당했다. 아버지는 31년간 피폭에 시달리다 58세, 어머니는 54년간 끈질긴 피폭의 통한과 통증에 시달리다 77세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피폭당했다는 걸 말하지 말아라. 시집 못 간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피폭으로 인해 내가 자식을 낳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아버지의 말은 사실이었다. 남편에게도 평생을 숨기고 살았다.

피폭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이 히로시마에 7만 명, 나가사키에 3만 명이 살았다. 그 가운데 절반이 원자폭탄 투하로 사망했다. 귀국한 피폭자는 히로시마 3만 명, 나가사키 1만 3000명이다. 일본에 그대로 남은 한국인이 히로시마 5000명, 나가사키 2000명이었다. 8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며 한국의 피폭자는 1800명이 생존한 상태다. 부산지부에는 500여 명이 여전히 후유증으로 치료 중이다.

김 시인은 “그동안 부산에 있는 피폭자들의 증언집이 없어 아쉬웠는데 죽기 전에 회원 증언 80년사를 내게 되어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이 책 맨 앞에 글을 쓴 강숙희(89) 씨는 “피폭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자는 심야에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떠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원폭 피해자는 어느 국민보다 비참한 전쟁 피해자다. 다시는 원자폭탄을 사용하는 전쟁이 없도록 세상에 알리는 일이 피폭 1세대의 유언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지금도 거리에서 핵의 위험성을 알리는 반핵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책은 부산시의 지원으로 비매품으로 발행됐고, 책 관련 문의는 부산지부(051-867-1945)로 하면 된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 회원 19명/혁진기획/152쪽/비매품.


<잊을 수 없는 그날의 記憶들> 표지. <잊을 수 없는 그날의 記憶들>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