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지는 삶에 익숙해지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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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신연식 감독 연출 스포츠 영화 '1승'
1승이 목표인 배구팀 이야기 다뤄
"좌절에 익숙해지지 말자는 위로"

영화 '1승' 스틸컷. 콘텐츠지오 제공 영화 '1승' 스틸컷. 콘텐츠지오 제공

스포츠 영화를 보는 이유는 반전과 짜릿함, 감동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주인공의 의지와 열정, 불꽃 튀는 경쟁으로 이어지는 스포츠 영화의 구조는 비슷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럴까? 스포츠 영화 중에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은 많지 않다. 배우의 연기력은 기본이고, 실제 운동선수 같은 실력과 함께 속도감과 리듬감을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스포츠 영화 제작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포츠와 드라마의 균형도 맞춰야 하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 중 성공한 작품을 꼽자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국가대표’(2009) 정도다. 그렇다고 스포츠 영화가 제작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비교적 최근작으로 서윤복 선수와 손기정 감독이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이룬 감동적인 승리를 스크린에 옮긴 ‘1947 보스톤’이 있으며, 천만 감독 이병헌의 후속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드림’도 홈리스들의 축구 경기를 다룬 스포츠물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신파(감동)와 스포츠 사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장항준 감독의 ‘리바운드’는 2012년 전국 고교농구대회에서 최약체로 평가받던 농구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농구 경기 장면을 컷분할 없이 롱테이크로 담아내며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고 있으나 이 영화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지난주 또 한 편의 스포츠 영화가 개봉했다. 한국 최초로 배구를 소재로 한 영화 ‘1승’은 탄탄한 시나리오로 정평이 난 신연식 감독과 뛰어난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 송강호의 만남으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1승’도 전형적인 스포츠 문법을 따른다는 점에서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결속력이 부족한 팀과 비전을 잃은 감독이 일치단결하여 감동을 자아내는 과정은 어쩐지 익숙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스포츠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승리’에 목적이 있지 않다.

영화는 이겨본 적 없는 감독과 이길 생각이 전혀 없는 괴짜 구단주, 이기는 법을 모르는 선수들까지 승리의 가능성이 1%도 없는 프로 여자배구단 ‘핑크스톰’의 여정을 그린다. 배구단 핑크스톰은 에이스 선수 성유라의 이적으로 해체 위기에 직면한다. 이때 재벌3세가 배구단을 인수하면서 우진에게 감독을 제안한다. 우진은 한때 실력 있는 선수였지만, 감독으로서는 10% 이하의 승률로 퇴출과 파면, 파산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별 볼일 없는 운동인이다. 그런 그에게 감독직이 오자 우진은 이상하다. 게다가 구단주는 시즌 중에 딱 한 번만 이기면 된다는 조건을 걸자 불안할 정도다.

인생이 고달픈 우진은 자신의 앞날에 이보다 더 매력적인 제안이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게다가 1승만 하면 되니 부담도 없다. 대충 감독을 맡다가 이직을 하려는 우진은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전패로 끝날 수도 있음을 자각한다. 지는데 익숙한 선수들이나 의욕 없는 감독에게 1승은 말처럼 쉽지 않다. ‘1승’은 배구 경기 특유의 긴장감과 속도감을 통해 관객의 시선을 끌지만, 다른 한편으로 스포츠를 금전적 가치로 환산해서 바라보고 있어 흥미롭다. 지금까지 스포츠를 땀이나 열정으로 정의 내렸다면, 이 영화는 지는 것마저 하나의 콘텐츠로 판매되는 상황을 그린다.

영화는 스포츠 영화답게 배구 게임에 공을 들인다. 특히 시즌 마지막 핑크스톰 게임은 실제 경기장에 있는 것 같이 생생하다. 하지만 영화가 진짜 말하고 싶은 바는 배구가 아니다. 영화는 모두가 욕망하는 1등이 아니라, 1승을 원한다. 승리 아니면 실패라는 공식에서 벗어나 간절한 1승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패배와 좌절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한다고 독려한다. 거기에 스포츠와 유머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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