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장소와 사유를 옹골차게 엮은 여행기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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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 배리 로페즈

<호라이즌> 표지. <호라이즌> 표지.

‘누군가 달아나려 한다면 그 목적지는 어디일까?’ 책의 뒷표지 맨 위에 적혀 있는 이 글귀가 너무나 낭만적인 것은, 일상에서 달아나고 싶은 내 절박한 심정의 반영일지도 모르겠다. 9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벽돌 책’을 펴든 것은 단순히 이 글귀 때문이었다. 전미 도서상 수상 작가 배리 로페즈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역작 <호라이즌>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현지에서 책이 출간된 지 5년 만이다. 책은 저자의 여행 경험을 집대성한 것으로, 그가 선보인 글 중 가장 방대하면서도 장소와 사유를 옹골차게 엮은 논픽션이다.

책은 북극, 남극, 북태평양, 남태평양, 아프리카, 호주 등 여섯 지역을 주로 다룬다. 북극권 지역으로 용감하게 파고든 선사시대 사람들, 아프리카를 침략한 식민주의자들, 태평양을 항해한 계몽주의 시대의 유럽인들, 외교의 문을 걸어 잠근 아시아로 건너간 미국인들 등 탐험과 여행을 둘러싼 인류의 오랜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또한 그 이야기들 속에는 인류의 기원(인류학), 땅의 역사(지질학), 생물들의 뒤섞임(생물학), 탐험과 식민주의(정치), 기후변화에 대한 윤리적 과학적 성찰(윤리학과 과학) 등 다양한 영역의 주제가 함께 녹아있다.

단점은 너무 두껍다는 거. 그리고 당연히 무겁다. 들고 다니면서 읽는다는 것은 무리다. 침대맡에 두고 자기 전에 조금씩 읽으면 아마 1년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달리 보면 장점이기도 하다. 흔히들 쉽게 술술 읽혀서 금방 다 읽는 책을 좋게 여기는데, 가성비 차원에선 같은 값이면 오래 읽을 수 있는 책이 좋다. 물론 출판면 서평을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그나마 ‘잠깐 읽기’ 코너라 가능했다. 만약 ‘완독하기’코너였다면? 내년 연말에나 가능할지도. 배리 로페즈 지음/정지인 옮김/북하우스/928쪽/3만 5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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