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배다지 의장 불법구금… 진화위, 국가 사과·재심 권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가 불법 구금과 고문, 자백 강요 등을 당하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고 배다지 민족광장 의장의 피해를 확인했다. 부산 민주화운동의 원로로 오랜 기간 활약한 배 의장은 56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진화위는 제93차 위원회를 열고 배 의장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등 인권침해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진실규명을 결정했다고 19일 밝혔다. 배 의장은 경남매일신문사(현 경남신문) 기자로 재직하던 1968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 대규모 대남간첩단 사건인 이른바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된 같은 신문사 논설위원과 화합해 반국가단체의 구성을 음모했다는 혐의다.
배 의장은 당시 논설위원과는 직장 선후배의 관계로 만났을 뿐 통일혁명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불법체포 당한 후 구금돼 고문·가혹행위 끝에 허위 진술을 했고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진화위는 이 사건의 판결문, 수사·공판 기록 등을 입수해 조사했다. 그 결과 배 의장이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 의해 1968년 10월 8일 검거된 것을 확인했다. 배 의장은 같은 달 11일 구속영장이 발부·집행될 때까지 4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받았다. 중앙정보부 소속 수사관들이 배 의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구타와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하고 허위자백을 강요했다.
진화위는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 구금·고문·가혹행위에 대해 국가가 사과하고, 화해를 위한 적절한 조치에 나서야 하며, 형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라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배 의장의 유가족 A(58) 씨는 “한 번은 어머니가 억울하고 추웠던 옥살이나 고문 당할 때의 느낌에 대해 말해주신 적이 있었는데, 나에게도 그 고통이 느껴지는 것처럼 분한 감정이 들었다”며 “성장 과정에서도 사회 분위기와 우리 집의 분위기가 다르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됐으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가장 기뻐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지난날 민주화운동에 애쓰셨던 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이 사회가 약자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 민주화운동의 원로였던 배 의장은 올해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겨레의길민족광장 상임의장을 지냈다. 부산에서 민주화·통일 운동에 앞장서 온 고인은 1995년 부산땅 하야리아 되찾기 시민대책위 상임대표를 맡아 미군 부대 기지 반환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배 의장의 영결식은 지난 4월 부산민주공원에서 시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