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하는 것’은 부름에 기꺼이 동참하는 일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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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시인 <초록…> 출간
생태 바탕 공존의 세계 꿈꿔

사람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이게 궁금하다면 ‘책하다’라는 제목을 가진 이 시가 하나의 조언이 될 수 있겠다. ‘冊을 읽는다는 것은 경화하는 맘이 푸딩처럼 말랑달콤해지는 일/관성에 이끌려 무뎌지지 않고 멈칫, 저의에 골똘하는 일/따로 걸어가는 누가‘들’이 도처에 있다는 메시지를 수신하는 일/‘누가’들로 만들어진 광장이 어디에도 있다는 확신으로 위무받는 일/여전히 책, 책, 책하는 것은 누구‘들’의 부름에 기꺼이 동참하는 일/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는 기약으로 행동하는 일.’ 2024년 연말을 강타한 충격적인 계엄령 사태에도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광장에 모인 사람들 덕분이었다. 어쩌면 책 덕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2000년 ‘다층’으로 등단한 이은주 시인이 최근 두 번째 시집 <초록, 눈부신 소란>을 냈다. 때가 때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시집이 ‘책하다’로 시작해 ‘지금, 우리는 침묵할 자유가 없다’는 제목의 시로 끝나는 점이 절묘하게 느껴진다. 사람은 왜 밥을 먹고, 또 밥벌이를 위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 이게 또 궁금하다면 ‘밥2’라는 시가 제격이다. ‘나는 오늘도 밥을 먹고 밥을 벌러 나간다/나에게 밥이 되어 줄 이들을 만나러 간다/내 밥은 공부 밥이어서 늘 달고 맛나다/나는 내 밥에게 더운 참밥이 되기 위해/따뜻한 말을 주머니에 가득 담아간다/우리가 서로에게 밥이 되어 주는/거룩하고 아름다운 관계일 때/세상은 단밥이 가득한 거대한 솔이 된다.’ 시인이 빚은 단어 ‘참밥’과 ‘단밥’이 세밑 시린 가슴을 데워 준다.

이 시인은 부산작가회의 회원이자 시 전문 계간지 <신생>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연대와 어울림의 시 세계’를 펼쳐오고 있다. 시인은 장산이 품은 마을에 깃들어 ‘느티나무 글방’을 운영하고 있다. ‘초록이 초록다울 수 있도록/태어난 제 기질대로 자랄 수 있도록/초록이 거세당하지 않도록/햇빛과 바람으로 물들 수 있도록/초록이 낙엽될 수 있도록/온전히 썩어 흙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그렇게 나온 표제작인 ‘초록, 눈부신 소란’을 비롯한 여러 시들에서 생명과 생태적 사상을 바탕으로 행복한 공존의 세계를 탐구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최근에 만난 이 시인은 뜻밖에도 땅을 샀다고 해서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다. 가난한 시인이, 시집이 얼마나 팔렸기에 땅을 샀다는 말인가. 알고 보니 이 시인은 생명 다양성 운동에 계속 기부해 오고 있었다. 시민들이 힘을 합쳐 땅을 공동으로 매입한 후 자연이 제 갈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야생신탁에 참여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시인은 “내가 생명에 관심을 가지는 게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 이 시인은 말 그대로 초록초록했다.


이은주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초록, 눈부신 소란>을 냈다. 이은주 제공 이은주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초록, 눈부신 소란>을 냈다. 이은주 제공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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