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지회장이 협박, 사무실에 도청장치 심었다”
울산 차부품업체 불법도청 의혹
직원 “도청기 설치 관여” 주장
경찰, 지회장·직원 휴대폰 압색
사실 확인 땐 노동계 파장 우려
노사 갈등이 이어진 울산의 한 자동차부품 업체에서 노조지회장이 직원을 시켜 사측 회의를 불법도청한 정황이 확인됐다. 경찰이 강제수사에 착수한 상태여서 범행의 전모가 밝혀질 경우 지역 노동계 등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22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모비스 등에 부품을 납품하는 A 사는 올해 4월부터 대표이사 주재로 관리자 회의를 하고 나면 석연치 않은 일이 반복됐다. 회사 생산운영 방안과 인사 관리 등 경영상 기밀이 빈번하게 새어나간 것이다.
예컨대 관리자 회의에서 생산직 전환 배치를 결정하면 발표 전에 배치 시기에 맞춰 직원들이 집단 연차를 내고 반발하는 식이었다. 주로 다수 노조인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주축이 돼 움직였다. 이 업체는 기존 한국노총 소속 노조만 있다가 올해 초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지회가 생기면서 복수노조 사업장이 됐다.
회사 측이 6월 10일 도청감지기를 가져와 기습적으로 사무실을 샅샅이 탐지했더니 감지기 알람이 울렸다. 회사 관계자는 “대표이사에게 서둘러 보고하고 다시 돌아왔더니 반응이 싹 사라져 버렸다”며 “곧바로 사무실을 대대적으로 수색했지만 결국 도청장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이후 외부 커피숍에서 주요 회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 사이에 자유로운 의사 소통이나 사내 회의가 아예 불가능해졌고 누군가 도청할지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 속에 일을 봐야 했다”며 “회사의 업무 효율성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경영상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도청장치의 공포가 여전하던 올해 8월 말 회사를 또 한 번 충격에 빠트리는 일이 발생했다. 직원 B 씨가 동료에게 ‘(민주노총 소속) 노조지회장의 지시와 압박에 어쩔 수 없이 녹음기를 사무실에 설치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B 씨는 회사 면담을 통해 “5월 27일 노조지회장 C 씨에게 볼펜녹음기를 받아 6월 24일까지 회사 대표이사와 간부간 회의 내용 등을 4차례 녹취해 전달했다”고 털어놨다. B 씨는 지회장인 C 씨의 협박을 받고 말을 따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줄곧 민주노총 노조와 임금·단체협약 교섭 창구 단일화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노조의 조직적 개입이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회사는 지난 10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노조지회장에 대한 경찰의 수사를 의뢰했다.
울산경찰청은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지난달 말 지회장과 여직원 B 씨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해 포렌식 작업을 진행 중이다. 경찰은 불법 녹취 파일을 여러 건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박을 당했다”는 B 씨 진술의 신빙성도 검증하고 있다.
지회장 C 씨는 이달 들어 희망퇴직하고 회사와의 연락을 끊었다. 취재진은 C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회사 안팎에서는 이번 불법 도청 의혹을 놓고 현장 권력에 도취한 지회장 개인의 폭주라는 시각과 함께 적대적 노사 관계의 폐해로 보는 분석도 나온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