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행정이 혼란 자초”…고성 대독산단 산세 공장 갈등 재연 되나
2021년 군과 150억 원 MOU 체결
금속가공업체, 도장·산세 공장 건립
군, 인근 주민 반발 ‘산세 공정’ 취소
업체, 변경 신청도 막히자 행정심판
도 행심위 “재량권 남용” 청구 인용
경남 고성군 대독일반산업단지 내 ‘산세 공장’을 둘러싼 갈등(부산일보 2022년 12월 6일 자 11면 등 보도)이 재연될 조짐이다. 1급 발암물질 유발 논란에도 제대로 된 여론 수렴 없이 공장 설립을 승인했다가 주민 반발에 번복했던 고성군이 관련 신청을 재차 불허했다가 행정심판에서 패소했다. 안팎으로 후유증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민원에 휘둘린 오락가락 행정이 혼란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25일 고성군에 따르면 경남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최근 대독산단 입주 기업 A사가 고성군을 상대로 제기한 ‘산업단지 계획(변경) 불가 처분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행정기관이 민원을 핑계로 합법적인 시설 도입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게 행심위 판단이다.
A사는 민선 7기 때인 2021년 고성군과 맺은 투자협약을 토대로 150억 원을 들여 대독산단에 금속가공제품 제조 공장을 건립했다. 그런데 애초 도장업만 계획했던 A사가 준공을 앞두고 산세 공정을 추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인근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산세는 스테인리스강을 생산할 때 황산이나 염산 등을 이용해 표면에 부착된 부산물을 제거하는 공정이다. 이 과정에 1급 발암물질인 니켈을 비롯해 각종 유해 물질이 발생한다. 대독산단 반경 1km 이내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비롯해 학교, 어린이집, 유수지 생태공원 등이 자리 잡고 있지만 공론화 절차는 없었다.
대책위를 꾸린 주민들은 군청 앞 집회를 통해 연일 부당함을 호소하고, ‘공장건립 건축 허가처분 취소’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군의회에선 특혜 시비까지 제기했다. 그럼에도 군은 ‘법적으로나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다’며 버텼다. 그러다 민선 8기 출범 직후 돌연 산세 공장 허가를 취소했다. ‘사업자가 거짓으로 부당하게 건축 승인을 받았다’는 이유였다.
대독산단 입주 기업은 사전에 특정대기유해물질 배출 여부를 명확히 밝히고 저감 방안을 확약해야 한다. A사는 산단 입주를 앞두고 군에 제출한 환경보전방안검토서에 유해 물질 발생은 없다고 신고했다. 그런데 2022년 1월 산세 공장 허가를 받으려 경남도에 낸 ‘대기배출시설 설치 신고서’에는 유해 물질(니켈)이 발생한다고 명시했다. 군과 도에 신고한 내용이 달랐던 것이다. 군은 이를 ‘중대한 결함’이라고 판단했다.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 제48조는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인가·승인 또는 지정을 받은 경우, 관련 인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곤 유사한 갈등 재발을 막겠다며 대독산단 관리기본계획을 변경, 앞으로 산세 공장을 가동하거나 관련 시설을 도입할 수 없도록 못박았다.
결국 A사가 산세 공정을 포기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2년여가 지난 올해 7월 A사가 ‘산세 시설 도입 허용’을 담은 산업단지 계획 변경을 다시 신청하면서 재점화 했다. 군은 주민 건강권 침해와 특정대기유해물질 발생 우려를 들어 재차 ‘불허’했고, A사는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행심위는 고성군 조처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한 처분”이라며 A사 손을 들어줬다. 행심위는 결정문에서 “고성군 주장은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보기 어렵다”며 “특정대기유해물질 발생은 약품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으로 A사가 변경 신고를 통해 필증을 교부받은 사실도 있는 만큼 취소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행정심판은 행정청의 위법·부당한 처분을 구제받는 절차다. 청구인이 승소하면 행정청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때문에 A사가 산세 시설 도입을 요구하면 승인해 줘야 한다. 군 관계자는 “신청 서류가 접수되면 법령에 따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인허가를 둘러싼 군과 기업 간 분쟁은 일단락됐지만 주민 반발 등으로 이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제 고성군 행정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주민 반발은 불 보듯 뻔하고, ‘못 믿을 행정’이란 꼬리표가 향후 기업 유치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