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국민의힘의 비뚤어진 탄핵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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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공모 칼럼니스트

홍준표 대구시장은 오래전부터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비판해 왔다. “한동훈이 화양연화였다는 문재인 정부 초기는 우리한테는 지옥과 같았던 시절이었다”라고. 그 심정은 이해한다. 그때가 어떤 때였나. 문재인 정부의 가혹한 적폐청산은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인사 1000여 명이 수사를 받았고 그중 200여 명이 감옥에 갔다. 수치심과 억울함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다.

정치적으로도 참담한 시간이었다. 탄핵 직후 치러진 2017년 대선은 물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보수정당은 치르는 선거마다 고배를 마셨다. 그것도 보수정당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참패였다. 어느덧 상수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긴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 정당이 개헌선을 넘볼 정도로 크게 이긴 적은 없었다. 지지율도 변변치 못했다. 인기가 없으니 툭하면 이름을 바꿨다.

비상계엄 사태 불구 탄핵 결사반대

보수 참패의 암울한 기억 학습효과

탄핵 자체보다 민심과 이반된 결과

지지층만 보고 가겠다는 판단 오산

정당지지율 부울경에서도 추락 중

정신 못 차리면 미래도 보장 안 돼

보수정당은 1990년 초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이 새누리당이 되기까지 22년 동안 당명을 세 번 바꿨다(민자→신한국→한나라→새누리).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새누리당이 당명을 세 번 바꿔 국민의힘이 되는 데에는 겨우 3년이 소요됐다(새누리→자유한국→미래통합→국민의힘). 그 3년 동안 정치 주도권은 보수 진영에서 진보 진영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국민의힘이 우려하는 ‘탄핵 트라우마’는 결국 그 시절의 암울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지지층은 분열, 반목했고 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그렇게 선거마다 연전연패했다. 이 끔찍한 악몽이 ‘또다시 대통령 탄핵을 반복해선 안 된다’라는 강한 반동으로 작용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중진들이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탄핵을 결사반대하고 있는 건 그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국민의힘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당시 자유한국당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지리멸렬했던 건 단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여서가 아니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보수정당에는 여러 차례 기회가 주어졌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탈원전, 검찰 개혁 등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서도 반발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는 그 정점에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보수정당은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극단적 보수·반공주의에 경도되면서 보통 사람들의 인식과 동떨어진 길을 걸었다. 평창동계올림픽 때가 그랬다.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을 놓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불공정 논란이 크게 일었다. 그런데 정작 이를 비판해야 할 야당 의원들은 통일대교로 가서 드러누웠다. “김영철의 방남을 막아야 한다”라며.

조국 사태가 한창일 때도 자유한국당은 ‘입시제도 개혁’이나 ‘부와 지위의 대물림 근절’이 아닌 ‘문재인 정권 퇴진’을 외쳤다. 공정, 상식 등 국민이 바라는 메시지는 온데간데없이 탄핵 무효, 종북 척결, 부정선거, 진상 규명 같은 단어가 난무했다. 그들이 소위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했던 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막지 못해서가 아니다. 탄핵에도 정신 못 차리고 민심을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오진은 잘못된 처방을 부른다. 그 시절 트라우마가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때문이었다고 믿는 그들은 민심이 어떻든 윤석열 대통령을 결사옹위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촉망받는 대권주자이자 얼마 없는 ‘인기 상품’이었던 한동훈을 졸지에 배신자로 낙인찍어 쫓아냈고,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걸로 추정되는 정치인들을 노골적으로 괴롭히고 있다. 덕분에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의 색깔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의원들의 수준도 균질해지고 있는 걸로 보인다. 문제는 이렇게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막는다고 한들 자유한국당 시절보다 형편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지난 19일 한국갤럽이 공개한 정기조사(데일리 오피니언 607호)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은 24%로 정확하게 더불어민주당(48%)의 절반을 기록했다. 현 정부 들어 최대 격차라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건 민주당은 오르고 국민의힘은 떨어지는 추세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지지층만 보고 가겠다고 판단했다면 오산이다. 국민의힘에 우호적인 편이었던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탄핵 찬성 여론은 반대 여론을 제친 지 오래다. 보수세가 강한 대구·경북도 별반 다르지 않다. 60대의 정당 지지율에서도 더불어민주당(43%)이 국민의힘(31%)을 꽤 앞섰다. 도대체 어떤 지지층을 보고 가겠다는 건가.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굳이 아주 좁은 교집합에 놓인 지지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하겠다면, 그들의 ‘탄핵 트라우마’는 과거가 아닌 현재이자 미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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