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북한발 세계 핵전쟁
북한 평양 근교에서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호가 미국 본토를 향해 발사된다. 미국은 30초도 안 돼 위성으로 ICBM 경로를 추적하지만 요격은 ‘총알로 총알을 맞추는 것’과 같이 쉽지 않다. 미국도 보복에 나선다. ICBM 발사 24분 만에 북의 82개 표적지를 향해 핵미사일을 쏜다. 미 반격을 자국 공격으로 오인한 러시아와 중국이 핵전쟁에 가세하고 세상은 종말로 치닫는다. 첫 발사부터 세계 종말까지 걸리는 시간은 72분. 벙커 속 살아남은 이들은 죽은 이를 부러워하며 혹독한 핵겨울을 맞는다.
최근 국내 출간된 미 탐사보도 전문기자 애니 제이콥슨의 〈24분: 핵전쟁으로 인류가 종말하기까지〉에 등장하는 핵전쟁 시나리오다. 핵전쟁이 한반도에서 시작된다는 건 끔찍한 상상이다. 막연하게 생각한 참상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가상 시나리오지만 저자가 15년간 핵무기에 정통한 관료, 개발자, 전략가 수백 명을 인터뷰하고 기밀 해제된 보안 문서를 섭렵해 분초 단위로 입체적 시나리오를 그렸다는 점에서 그냥 흘려 넘길 수 없는 이야기다. 특히 저자는 허무주의적 광인 한 명이면 승자 없는 핵전쟁이 시작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몇 년 사이 고조되는 한반도 핵 위협은 〈24분〉의 경고를 뒷받침한다. 북한은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지속적으로 핵 자산을 고도화해 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과 함께 북미 대화를 위한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북의 태도는 1기 때보다 강경해진 모습이다. 미 북부사령관 그레고리 기요 공군 대장은 13일 상원 군사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생산을 곧 개시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핵 도발 시나리오에 힘을 실었다.
핵과학자회는 최근 ‘지구종말시계’를 지난해보다 1초 앞당긴 자정 89초 전으로 맞췄다. 1947년 지구 종말 시점을 자정으로 설정하고 7분 전에서 시작했는데 그 후 가장 종말에 가까운 시간에 진입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핵전쟁이 발생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3차 세계대전에 어떤 무기가 사용될지 모르지만 4차 세계대전은 막대와 돌을 가지고 치를 것이라고 했다. 석기시대 전쟁 방식이다. 핵전쟁 후 인류 문명은 멸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1만 2000년에 걸쳐 쌓은 문명이 겨우 몇 분, 몇 시간 만에 폐허로 돌아가는 게 핵전쟁의 현실이다. 특히나 그 출발이 한반도여서야 되겠는가.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