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과두제 미국 대응법
석유와 천연가스 등 국가 자원을 장악한 러시아 재벌 ‘올리가르히’는 정치 권력과 동일체다. 공산주의 해체 이후 국영기업 민영화 때 자산을 불린 신흥 재벌은 정부 요직에 파고들어 국정을 좌우하기에 이른다. 극소수 정치, 기업 엘리트가 결탁한 정치 체제, 즉 과두제(oligarchy)다. 과두 정치는 필연적으로 부패와 불평등, 사회 지체를 초래한다. 지중해 해상 무역을 장악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이 전형적인 사례다. ‘도제’(Doge·총독)를 내세운 소수 귀족이 권력을 독점했는데, 폐쇄성 탓에 국가 경쟁력을 잃어 패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 과두제 비판이 거세다. 석유와 천연가스 대신 IT와 플랫폼 재력가가 이너 서클을 형성한 게 차이점이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15일 고별 연설에서 “지나친 부와 권력, 영향력을 가진 과두제가 형성되고 있다”며 ‘악덕 자본가’라는 거친 표현까지 동원해 민주주의 위협을 경고했다.
과두제 논란의 꼭짓점에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있다. 그는 정부효율부(DOGE·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수장을 맡아 정부 기관 폐지와 대규모 감원 선풍을 주도하고 있다. 벌써 연방 공무원 중 수습 직원 1만 명을 해고했다. 정부 부처도 아닌 임시 조직이, 선출되지 않은 임명직 인사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모양새다. 위헌, 위법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13일 정부효율부에 대한 하원 청문회에서 그렉 카사르(텍사스주) 의원은 머스크가 연방정부와 연간 30억 달러에 이르는 계약 100건을 체결해 “하루로 치면 800만 달러(우리 돈 115억 원)씩의 수익을 얻는다”며 금권 정치를 고발했다. 그는 사회보장 수당으로 생계를 잇는 은퇴자 하루 생활비 65달러(우리 돈 9만여 원)와 비교해 보라고 일갈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주, 무소속)은 13일 “과두제와 싸우겠다”고 선언하며 전국 투어를 시작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에 협력하는 테슬라(머스크), 메타(마크 주커버그), 아마존(제프 베이조스) CEO 3명의 자산을 합치면 9000억 달러(우리 돈 1300조 원)가 넘는데 이는 “미국민 하위 절반을 합친 것보다 많고, 또 트럼프 당선 이후 증가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2.0 행정부는 전 세계가 수용하기 힘든 막무가내 언행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로 읽히는 대목도 있지만, 금권 과두제가 미국 우선주의의 새 동력이 된 점을 놓치면 곤란하다. 과거와 같은 대응법으로는 길을 잃을 뿐이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