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은퇴 투어'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하다가 일선 현장을 떠나는 은퇴자의 뒷모습에는 애잔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기운이 감돈다. 아쉬운 내색 없이 아무리 평소처럼 보이려고 해도 등 뒤로 길게 드리워진 쓸쓸함의 음영은 돋을새김으로 남는다. 떠나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그 음영 속에서 서로 말없이 표정으로만 마음을 전할 뿐이다.
이럴 때 은퇴의 아쉬움을 달랠 만한 이벤트라도 있다면 서로에게 퍽 깊은 의미로 다가올 듯싶다. 대한민국의 ‘배구 여제’로 불리는 김연경(37·흥국생명) 선수가 한국프로배구 V리그 사상 최초로 공식 ‘은퇴 투어’를 갖는다는 소식은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은퇴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은퇴 투어는 프로스포츠에서 은퇴를 앞둔 선수가 시즌 마지막에 다른 팀의 홈구장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를 때마다 갖는 은퇴 기념행사다. 상대편 구단이 그 선수에게 기념 선물을 전달하고, 타 구단 팬에게도 고별인사를 하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원정 경기에 나선 다른 팀의 선수를 위해 타 구단이 은퇴 기념행사를 주관하는 것인 만큼 은퇴를 앞둔 선수로서는 더없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아무나 은퇴 투어를 할 수는 없다. 어느 팀이나 인정하는 ‘레전드’급 선수라야 누릴 수 있는 은택이다. 그래서 극소수만 그 주인공이 된다.
출범 20년 된 V리그에서는 김연경이 처음이라고 한다. 2005~2006시즌 데뷔 첫해에 신인선수상과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챔피언결정전 MVP를 싹쓸이하며 유일무이한 기록을 남겼고, 또 세 차례 챔프전 우승, 정규리그 MVP 6번, 라운드 MVP 13번의 최다 수상 기록도 갖고 있다. 우리나라 프로스포츠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프로야구에서도 이승엽과 이대호 선수, 단 두 명만이 은퇴 투어의 영광을 누렸다. 프로농구에서는 김주성 선수가 유일하다고 한다.
드물고도 귀한 경험인 만큼 은퇴 투어는 그 자체가 이미 성공한 선수의 훈장과 같다. 다만 이 같은 경험을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대다수 보통 선수들이 느낄 수 있는 마음속의 복잡한 감정도 어루만져 줄 필요가 있다. 운동 분야뿐 아니라 많은 다른 분야에서도 대다수 은퇴자는 그저 조용히 사라질 뿐이다. 떠나야 할 시간만이 그의 동반자이다. 김연경의 은퇴 투어 소식을 접하면서 많은 은퇴자가 박수와 환호까지는 아니더라도 따뜻한 석별의 정이라도 듬뿍 간직하고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