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떻게 동물 악당을 만들어 내는가?
■나쁜 동물의 탄생 / 베서니 브룩셔
인간 사정에 따라 동물 선·악 판단
‘유해 동물’ 간주되면 무자비한 처단
‘비인간 이웃들’과의 공존 모색해야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으로 지리산에 곰 세 쌍을 방사한 지 20년이 지났다. 어느덧 세대를 거듭해 80여 마리가 됐다고 하니, 성공적인 생물 복원 사례로 평가 받을 만도 하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상위 포식자인 곰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아직은 특별한 인명 피해는 없지만, 양봉 농가 등에서는 경제적인 피해 사례가 왕왕 보고되고 있다. 만약 곰의 개체 수가 계속 불어나 우리가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가 복원하려 했던 이 ‘귀한 동물’은 오히려 우리에게 ‘해로운 동물’로 낙인 찍혀 조만간 인간의 총구를 피해다녀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반달가슴곰의 이야기는 ‘가정’에 불과하지만, 현실에 ‘실재’하는 사례도 차고 넘친다. 단지 인간 사정에 따라 어제 사랑받던 동물이 오늘 미움받는가 하면, 오늘 경멸당하던 동물이 내일은 찬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정작 동물은 ‘개과천선’하지도, ‘흑화’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베서니 브룩셔의 책 <나쁜 동물의 탄생>에는 이처럼 억울한(?) 동물의 사례들이 가득하다.
아메리카 대륙의 초기 정착민들에게 늑대는 소·양·사슴 고기를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이었다. 정부는 두둑한 포상금을 내걸었고, 사람들은 늑대를 마구 사냥했다. 그러다 늑대가 드물어지자 피식동물들의 개체 수가 폭증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늑대 보호로 입장을 바꿨다. 심지어 오늘날 그 지역인들에게 늑대는 순수하고, 감탄스럽고, 고귀한 존재로 여겨질 정도다. 1930년대 호주에서는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해충을 먹는 사탕수수두꺼비를 들여왔다. 그러나 오히려 독이 든 두꺼비를 잡아먹은 토착 동물들이 줄줄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먼 나라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평화의 상징이자 우편부이고 효율 좋은 식량이기도 했던 비둘기는 쓸모가 사라지자 ‘도시의 민폐’ ‘날개 달린 쥐’로 전락했다.
이처럼 인간은 경제적 효용과 문화적 학습, 심지어 단순한 선호와 같은 자의적 기준에 따라 끊임없이 ‘나쁜 동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일단 어떤 동물이 ‘유해동물’로 간주되면, 우리는 마치 ‘살해 면허’가 발급된 것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들을 ‘처리’한다. 책을 읽다보면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유해동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에게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저자는 말한다. “다행히 인간은 끈덕지고, 지략이 풍부하고, 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호주의 사탕수수두꺼비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두꺼비는 호주의 생태계에 통합됐다. 호주의 과학자들은 두꺼비가 침입하지 않은 지역에 두꺼비 올챙이를 방류했다. 토착 동물들로 하여금 독성이 약한 새끼 두꺼비를 잡아먹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미리 배탈을 앓게 만드는 대신 두꺼비를 잘못 먹었다가는 큰일 난다는 교훈을 가르치려는 것이었고, 이 프로그램은 성공했다. 인간이 잘못 꿴 첫 단추를 인간의 노력으로 다시 되돌려놓은 것이다.
결국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공존’이다. 물론 공존이 늘 평화롭고 달콤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존해야 한다. 동물뿐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도 그러하다. 동물 서식지에 식량이 부족하면 녀석들은 민가로 내려올 것이 뻔하다. 특정 동물을 마구잡이로 도살하거나 내키는 대로 도입한다면 생태계 균형은 무너지고 그 악영향은 인간에게도 미친다.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비인간 이웃들’과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게 하는 책. 베서니 브룩셔 지음/김명남 옮김/북트리거/508쪽/2만 4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