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사람들은 메뉴를 통일하지 않는다고?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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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타이완/카이랑


그러니까, 타이완/카이랑 그러니까, 타이완/카이랑

언제부터인가 대만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고 있다. 어쩌면 지금 지하철을 같이 탄 중국어 쓰는 외국인 관광객도 대만인일지도 모른다. 부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대만인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만의 SNS에는 ‘부산병에 걸렸다’라는 게시물이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부산병’은 부산 여행을 다녀온 뒤 부산이 그리워지는 상태를 말한다. 부쩍 가까워진 대만, 우리는 대만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과 대만의 1인당 GDP는 마치 라이벌 야구팀 간의 경기를 보듯 엎치락뒤치락했다. 야구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대만에서 야구의 인기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대만은 2024년 WBSC 프리미어12에서 일본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만의 124개 대학 중 절반인 60개에 야구팀이 있다. 한국 치어리더의 대만 진출도 속속 이어지고 있다. 최첨단 반도체 시장에서 선의의 경쟁자이자 우리와 가장 닮은 대만은 어떻게 아시아 행복지수 1위에 올랐을까.

<그러니까, 타이완>은 우리가 대만으로부터 배울 점은 무엇이며, 반면교사로 삼을 점은 무엇인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쓴 책이다. 대만 젊은 세대에게 한국은 음악과 드라마, 패션과 음식으로 연결된 친근한 나라가 되었다. 이들은 팬 커뮤니티 활동을 하거나 한국어를 배우고, 직접 한국을 방문하는 등 적극적으로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드라마를 통해서 오빠라는 단어가 널리 유행하고 있다. ‘오빠’는 나이와 상관없이 멋있고 잘생긴 한국 남성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쓰인다니 참….

대만 거리 곳곳에는 일본식 건물이나 일본 스타일의 풍경이 남아 있다.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더 긴 50년(1895~1945년)의 세월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지배와 착취를 당했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대만에 여행을 많이 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대만인이 가진 일본에 관한 호의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국민당 정부가 대만을 통치하는 과정에서 본래 대만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본성인(本省人)의 희생이 컸다. 국민당 정부에 대한 실망이 결과적으로 일본에 대한 적대감마저 옅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대만의 식당에는 메뉴도 많지만, 메뉴마다 옵션이 있다. 달걀 프라이도 반숙인지 완숙인지 골라야 하고, 같은 완숙이더라도 노른자를 터트릴 것인지 말 것인지도 디테일하게 주문할 수 있다. 음료도 컵 사이즈, 온도, 당도 비율, 얼음의 양, 토핑 추가, 휘핑크림이나 파우더 여부까지 결정해야 한다. 대만인들이 어떤 순간에도 메뉴를 통일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나만을 위한 식사 한 끼와 음료 한 잔은 내가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늦게 시작한 중국과 대만 간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지금까지도 잘 유지되고 있다. 1993년에는 대만인과 결혼한 중국 배우자의 대만 거주가 가능해졌다. 2011년부터는 두 지역 간 유학생 교류도 하고 있다. 대만 남녀 고등학생은 지금도 실탄 사격 훈련을 하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북한과 이런 수준의 교류가 이뤄질지 모르겠다. 한국은 대만을, 대만은 한국을 서로 아는 것보다 알아가야 할 것이 더 많다. 카이랑/두리반/240쪽/1만 88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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